신학, 하느님과 이성
미하엘 제발트 지음, 신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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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이라고 가톨릭출판사에서 책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와 9·10월의 도서는 자발적 선택입니다.


여기저기 봉사를 해봤지만 가장 보람된 봉사를 꼽으라면 저는 가톨릭출판사 도서 봉사를 꼽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서평을 쓰면 책도 주고, 해마다 굿즈도 한 보따리 보내주고, 독서모임으로 출판사에 가는 날에는 맛있는 간식도 꼭 챙겨주십니다.


그래서 언젠가 어떤 분이 “다른 데는 돈 내고 가도 이렇게까지 안 챙겨주는데 여기는 우리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라고 하셔서 다 같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


가톨릭출판사는 책을 나누는 일만큼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참 잘 내어주는 고마운 곳입니다.


이번에 선물로 받은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조선 천주교의 출판 활동과 한글 교리서의 역사를 따라가며 신앙이 책과 글을 통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살펴보는 책입니다. 조선시대 천주교 출판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좋습니다.


오늘은 가톨릭북클럽 9·10월의 도서 『신학, 하느님과 이성』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조직신학 입문서입니다. 제목부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저는 꼭 이런 책이 땡기더라고요. 제 손으로 골랐으니 뭐…. 낙장불입. ㅋ


먼저 책의 내용을 아주 짧게 소개해보겠습니다.


1장은 신학이라는 학문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에 해당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신학과 신학자가 존재하며, 어떤 신학도 하느님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신학이라고 부르는 공부가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기본적인 방향을 잡아줍니다.


2장의 제목은 ‘신학-학문의 별종’입니다.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신학이라는 개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신학이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역사신학·실천신학·교파신학 등 여러 신학 분야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살핍니다. 하느님을 연구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학문처럼 연구 대상을 눈앞에 놓을 수 없는 신학의 독특한 처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3장은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직접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학문적으로 성찰하고, 인간의 실제 삶을 다루면서 사변적인 사고도 수행하며, 신앙을 고백하면서 스스로를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하는 신학의 여러 얼굴을 보여줍니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다룹니다.


4장은 조직신학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교의신학은 무엇을 믿는지, 기초신학은 그 믿음이 어떤 근거 위에 서 있는지, 윤리신학은 그 믿음으로부터 어떤 삶이 이어지는지를 묻습니다. 각각의 분야가 하나의 신앙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5장에서는 조직신학이 실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되는지를 다룹니다. 신학에도 역사적 조건과 시대적 한계가 있으며 신학의 언어 역시 계속 검토되어야 합니다. 신학자가 무엇을 근거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신앙의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주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묻습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6장 ‘이성과 하느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은 인간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과 최근의 여러 시도도 살펴봅니다. 인간의 이성이 어디까지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오래 붙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입니다.


7장은 교회가 고백하는 하느님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시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계시를 다룹니다. 인간이 이성으로 하느님에 대해 추론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가 실제로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마지막 8장은 ‘계셔야 하는 한 분이신 하느님’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희망,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다루며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들 앞에서 신학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은 인간의 머리로 다 알 수 없는 분”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느님은 공부해서 아는 분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인간의 도덕 기준 안에 가두어 말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런데 왜 신학은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킬까요.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레포트를 쓰고, 심지어 신학 박사도 있습니다.


신심과 지식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신학 박사님들은 왜 그렇게 많은 걸까요.


현대인들은 무엇이든 이해하려 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근거를 찾고, 개념을 구분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쉽게 비합리적인 것으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인지와 설명을 중시하는 시대에 종교가 아무 설명 없이 “믿으라”고만 한다면 사람들은 종교를 미신처럼 여기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신학이라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신학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언어를 갖게 합니다. 신앙과 미신을 구별하고, 내가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내 생각을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요구는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성이 갈 수 있는 데까지 질문하고, 그 끝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도 알아가는 일이 신학 공부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또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종교가 너무 거룩한 곳에만 머물면 세상과 동떨어졌다고 합니다. 시대의 변화와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면 이번에는 종교가 세속화되었다고 합니다.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다만 현대인과 종교가 만나는 데에는 이성과 함께 마음과 체험의 자리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은 내가 믿는 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하고, 체험은 그 믿음이 실제 삶과 연결되게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리를 알고 있어도 삶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신앙은 멀게 느껴질 것이고, 강렬한 체험만 있으면서 그것을 성찰할 언어가 없다면 그 체험의 의미를 오래 붙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신앙에는 생각하는 일과 살아보는 일이 함께 필요한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신학은 교회와 사회 안에서 계속 질문하고 논쟁하며 성찰해야 하는 과제로 제시됩니다.


『신학, 하느님과 이성』은 쉽지 않은 책입니다. 읽다가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지?”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ㅋ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저는 한 가지 질문을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인간의 머리로 다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왜 하느님을 공부하는가.


아직 제 답은 이 정도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많이 안다는 것이 믿음의 크기를 말해주지는 않더라도, 잘못 믿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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