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인간의 생각
AI가 만든 이미지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그 이미지 안에도 철학과 인문학적 사유가 스며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과 예술가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존재가 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2026년 7월호를 접하게 되었다.
이번 호의 테마는 ‘AI 시대’지만 잡지는 곧바로 AI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를 비롯해 조형아트서울, 석주 윤영자 10주기 기념전 등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미술 기사들이 앞부분에 실려 있었다. 인간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예술의 현장을 먼저 보여 준 뒤 AI 음악과 미술, 영화로 넘어가는 순서가 좋았다. 익숙한 예술의 현장에서 현재의 AI 예술로 이동하는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AI 테마 가운데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되살려 그의 노래를 듣는 이야기였다. 익숙한 목소리를 다시 들으면 사람은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끼고, 실제 인물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AI와 감정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지만 AI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과 AI 사이의 관계를 감정적 교류라고 불러도 되는지 궁금해졌다.
나 역시 AI를 사용하면서 흥미로운 차이를 경험했다. 내가 어떤 문제에 관해 할 말도 없고 의견도 없는 상태에서 답을 요구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법한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반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과 의견을 먼저 제시하면 결과도 달라졌다. AI가 내 생각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생각해야 AI도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기사중에 AI 문체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 AI글이라는것을 지각하고는 거부감 때문에 더 읽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필자는 AI가 만들어 준 글을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여겼을 것이고, 편집 과정에서도 그 문체가 걸러지지 않은 듯했다. 그 글을 보면서 AI를 사용하려면 먼저 AI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든 이미지든 아직은 AI 특유의 표현과 방식이 눈에 띌 때가 많다. AI가 만들어 준 결과를 그대로 내놓으면 사용자의 생각과 개성은 드러나기 어렵다. 생성된 문장과 이미지에 자신의 관점과 문체를 입히고, 사실관계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인터넷이 처음 보급되던 시절에는 책으로 정보를 얻어야 제대로 된 공부이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일은 가볍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와 글쓰기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AI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AI로 만든 글과 이미지를 낮게 평가하는 시선이 있지만, 앞으로는 사용 여부보다 결과의 완성도와 사용자의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쿨투라》 7월호를 읽고 나니 AI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많은 일을 도와주더라도 남들과 다른 시선과 의견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AI가 내놓은 결과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바꿀 것인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