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세대를 위한 서양철학 : 고중세 편 – 세계와 인생에 대한 지혜』는 국내에 고대와 중세 철학을 묶어 쓴 책이 없고, 철학사를 목적으로 수업을 하기에 적당한 교재가 없어 저자가 본인 수업 교재로 쓰려고 만든 책이다. 스스로의 필요에 만든 교재였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얼마나 깊이 있게, 어느 정도의 분량 만큼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본인이 더 잘 아는법이다. 책이 두꺼운만큼 꼼꼼하게 자세한 설명이 충분히 들어가서 오히려 읽기가 쉬웠다. 필기 따로 안해도 될 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고대를 다 읽고 중세를 시작하다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고등학교 윤리시간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 교양 철학, 그 이후의 철학서적을 통해서도 중세 철학을 따로 배운적이 없었다. 매번 고대 철학 다음에 중세는 신 중심 철학, 중세 암흑기였다는 말이 전부가 되어 바로 근대 철학으로 넘어갔었다. 저자께서는 당시 한국에서 중세 철학을 배울 곳이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 리옹 가톨릭 대학교로 가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전공하고 파리 1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로 박사를 하셨다. 그래서 이 책은 고대 철학의 내용도 알차지만 특히 중세 철학이 정리가 잘 되어있다. 종교 서적이 아닌 일반 철학서 분야로는 중세 철학에 대해 이만큼 친절하게 다룬 책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중세 철학을 처음 접하는 입장이라 이 책이 너무 어렵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친절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중세철학 참고서 느낌이었다. 중세 철학은 정말 암흑기의 산물이었나, 중세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나, 중세는 신 중심의 사회였나에 대해 편견 없이 소개되고 있다. 중세 철학은 외부 세계보다는 인간의 내면, 진정한 자아, 나의 본질에 대해 보다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중세 철학자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아직 살아계시면 백세쯤 되신 노모와 함께 사시는 지리산 문화재 고택 사진가 암브로시오 어르신 형제님이 생각난다. 조선 후기 지어진 고택에서 커다란 백리향 나무 옆 우물이 있는 마당을 바라보며 아프리카 원두를 핸드그라인더로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려 스타벅스 컵에 담아 주시던 커피가 참 맛있었다. 😆 아무튼~! 밀라노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탁월한 성경 해석으로 소개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내용이 공교롭게도 내일 하는 성서공부 창세기의 배움 문제다. 모범 답안지를 여기서 얻었다. 토미즘의 지성주의의 의미를 알아보는 챕터에서 정신을 가진 인간은 자기 세계를 가지기 위해 산다는 소제목을 보는 순간 반쯤 잠에 취한 나는 왜 그 말에 울컥했을까. 보에티우스의 책 제목처럼 나는 그시간 철학의 위로를 받았던 것인지 깊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아우구스 티누스의 모토가 “알기 위해서 믿는다.” 라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기 위해서 먼저 알고자 한다.”가 모토가 된다. 나는 좀 더 단단한 중심을 갖고 믿기 위해 알고 싶었다. 한 번 읽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더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