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의 흐름, 아니 시간 자체는 아직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것 중 하나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온갖 신비로운 것들이 해석되고 보다 더 좋게 쓰이기 위해 응용되는 현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초월적인 부분이라 정복되지 못한 부분도 상당하다. 시간은 그 중, 우주와 맞먹을 정도로 정복하기 버거운 거대한 존재다. 또한, 우리의 삶과 가장 근접한 것이기도 해서 가깝고도 복잡한 것이라 해야 겠다. 타임머신이라는 이론까지 나왔지만, 아직까지는 실질적으로 시간에 대해 이렇다 할 접촉을 한 경우는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있는 그대로 두고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만약 손을 댈 수 있다면 그게 도대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일지.

 시계관은 어떤 면에서 관 시리즈 초기 작인 십각관이라는 건물(건물 만이다.)에서 느꼈던 기상천외함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온갖 시계들로 채워진 것으로도 모자라, 디테일이 느껴지는 거대한 시계 형상의 건물에 기묘한 시계탑까지. 갖갖이 장치까지 보면 이 시계관도 십각관 만큼이나 상당한 병적인 건축물이라는 게 느껴진다.

 심각관에서의 참극 이후, 희담사 편집부에 들어간 가와미나미는 특별기획으로 가마쿠라에 있는 시계관이라는 저택에서 일어나는 심령현상을 취재하러 간다. 시계관이라는 이름에서 십각관과 나카무라 세이지를 떠올린 가와미나미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에 휩싸인다. 저택 구관에서 본격적인 심령현상 취재가 시작되고, 심령술사인 고묘지 미코토가 실종되면서 참극이 시작되는데...

 시점이 두 개로 분리되어 진행되는데, 같은 건물에 있음에도 서로 다른 사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는 시마다 기요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암호문 풀이 저택 미스터리. 다른 하나는 가와미나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특수한 클로즈드 서클 저택 미스터리.

 십각관이 단순히 모양으로만 병적인 분위기를 낸 것에 비해, 시계관은 시계라는 형상 뿐만 아니라 각종 시계, 시간 개념, 더 나아가 시간의 흐름, 시간의 한정 같은 시계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시간적인 면을 이용해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병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흉기까지 시계가 활용되니 시간의 감옥 속의 시간의 사신이 아닐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시계 속에 갖힌 형태로 보인다. 애초에 시계 형태의 건물부터가 시간을 가두기 위한 공간이자 실존하는 형태의 시간 그 자체이고, 거기에 안에서 108개의 시계가 매 시간 울리기까지 하면 시간의 흐름을 감시하는 것이자 가두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거대한 시간의 존재를 느끼며 시간 속에 갖히게 되는 것이다. 그냥 살아가면서도 시간이 신경쓰이는 마당에, 그걸 영원히 느끼며 살아간다 하면 얼마나 끔찍할까.

 관 시리즈를 보면 가면 갈수록 비밀장치가 전부라 딱히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트릭이 있을지 기대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나중에 범인이 튀어 나올 것이라, 오직 어떤 비밀장치가 있을까에 치중되기 쉬웠다. 그런 걸 생각하면 시계관은 비밀장치는 비밀장치대로 두고, 거기에 따로 사건 자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트릭이 존재해서 큰 충격을 준다. 처음에 뻔한 결론처럼 보이는 걸 던저주기 때문에 더 큰 반전이다. 큰 그림이라는 것이 아마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딱히 눈 앞에 실존한다는 느낌은 없다. 그 실존된 형상을 만들기 위해 과거부터 여러 방법으로 시간을 형상화하고 세밀화한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시계라는, 시간의 실체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완벽하게 형상화 된 이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됐는 가. 더 편해졌다는 것이 전부일까. 실존된 모습의 시간에 갖혀 더 크게 볼 수 있을 시간 개념을 한정된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본래 공포란 딱히 정해진 이미지라는 게 없다. 공포하면 귀신, 벌레, 살인마, 어둠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가면 광대, 심해, 우주, 외계인, 높은 곳 등, 각종 공포증으로 설명되는 것들까지 나온다. 단순히 무섭게 생겼다, 징그럽다, 로 공포를 설명하지만, 그 근원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은 미지. 내가 사는 현실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정체불명의 존재, 혹은 현상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되면 공포로 변하게 된다는 것일까?
 장난감 수리공은 단 2개의 작품만 수록되어 있지만, 내용에서 오는 파괴력이 상당하다. 오래 전에 나와 희귀품이 된 토탈호러라는 단편집에 있던 끔찍한 단편들에 견줄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흔한 공포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 현실을 붕괴시킬 뿐이다.

장난감 수리공

 그녀는 낮에만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버릇이 있다. 그 이유를 묻자니, 흉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흉터가 생긴 것은 어린 시절에 만난 장난감 수리공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 회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에 비해 상당히 잔혹한 부분이 많았다. 순수한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생명이라는 지각이 있냐 없냐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상황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 놀라울 뿐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어른들이 모르는 상상 속에서 현실적으로는 잔인하게 보이는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악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건 알아두어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게 잘못되서 어른들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발상으로 이어진 것 뿐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뒤틀리는 부분에서는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물과 식물, 움직이는 가와 움직이지 않는 가. 이거면 대부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나눈다. 하지만 더욱 세분화된 가정, 거기다 기계장치의 원리까지 포함해서 생각해 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기계라는 관점이 생긴 이후로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혼선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잔혹하고 충격적인 내용도 소름돋는데, 마지막 결말까지 판을 뒤집기 때문에 독자가 이제 끝이라 생각하며 안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 모든 가정과 눈에 보이던 사실이 전부 박살난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지누는 직장동료들과 자주가는 술집에서 시노다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자기가 대학시절 친구이지만, 지누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누구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던 지누에게 시노다는 자신이 겪은 충격적인 일을 알려주는데..
 물리학이 기반으로된 시간여행을 다룬 SF다. 시간여행은 허버트 조지 웰즈의 타임머신까지 거슬러 올라만큼 오래됐고, 아직까지도 여러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소재거리라 여기서도 상당한 충격을 준다.
 일종의 현실적인 루프물이라 볼 수도 있다. 일정한 시간대를 돌고도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자각이라는 게 없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걸 자각하게 된다고 생각해 봐라. 시작이 있으면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걸 끝으로 다른 시작점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반복된다면 무슨 일을 하든 거기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 결론에 도달해도 그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다시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상보다 끔찍한 시간여행이라는 것도 공포지만, 내가 살아가는 현실 곳곳이 왜곡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무섭다. 데자뷰라던지, 단순한 기억혼선이 우연이나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지만 현재의 나와는 관련없는 일이라면 도대체 내 눈 앞의 세상은 실존하는 것인지까지 의심스러워진다. 결국에는 내가 하던 일과 내가 알던 사람, 내가 사는 곳이 정체불명이 되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미지가 되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게 더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브크래프트 전집 6 - 러브크래프트 전집 6 외전 (하) 러브크래프트 전집 6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권에 수록된 것은 대부분 러브크래프트가 영향을 받은 작가나 가까운 지인의 단편이다. 대체로 영향을 받은 단편은 색다른 느낌을 많이 받고, 가까운 지인 같은 경우는 러브크래프트와 비슷하거나 그 보다 더 하다는 느낌까지 들고는 한다.

 

질리아 비숍_고분

 외전 상권에서 뱀과 관련된 단편 둘을 봤었다. 중편 분량으로 질리아 비숍의 간단한 호러 소재를 가지고 러브크래프트 본인 스타일로 창작된 건데, 그저 그런 인디언 전설 공포 시놉시스로 드림랜드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인 세계를 만들어낸 걸 보며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과 상상력이 얼마나 거대한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태고의 세계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어디서나 나오는 불경한 존재의 땅에 침입했다가 파멸당하는 내용처럼 보였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드림랜드 같은 미지의 세계 탐험 같은 분위기가 된다. 하지만 랜돌프 카터가 드림랜드를 모험하며 다녔던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중에서 크툴루와 차토구아 등이 언급된 이상 아무리 잔잔한 신비로운 세계라도 곧 인간의 이해범주를 넘어선 공포가 나타나게 돼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주연 인물이 공포의 단면만 직접보고, 나머지 전체는 간접적으로만 접해서 멀쩡했다는 것과, 허버트 웨스트에서 나온 것과 다른 형태의 좀비가 나온 점이다. 이 좀비는 현대적 좀비 보다는 아이티 전설 속의 좀비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보였다.
 기계로 인한 규칙성 있고 표준화된 삶이라는 구절에서 이게 산업혁명을 나타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삶을 산지 오랜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냉소와 히스테리로 반응한다는 부분이다. 사치스러운 숭배, 혐오적인 유희와 사상, 공허 속에서 새로운 걸 갈망하는 것까지 나왔으면 잘못 본 게 아닐 것이다. 고분 속 지하세계의 모습은 러브크래프트가 상상한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그것도 상당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버린.

헨리 화이트헤드_보손

 외전 상권에서 함정이라는 단편에서 봤던 이름이다. 산뜻한 느낌이 특징이라 역시 밝은 분위기가 작중 내내 존재한다. <함정>에 비하면 다소 판타지적인 느낌이다. 신분차이가 있는 이들이 종말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내용이 영화 <폼페이>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다. 그렇다보니 신선한 면이 거의 없어보이고, 배경이 초고대문명이라지만 딱히 특별하게 표현된 곳도 없어서 밋밋하다. 그냥 고대 로마나 고대 그리스의 사라진 도시라 해도 될 법했다.
 바다에 수장된 초고대 대륙의 문명의 최후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분차이를 넘어선 사랑 얘기와 두루뭉실하게만 서술된 종말이 휩쓴 대륙의 모습이 그다지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평범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로버트 W. 체임버스_명예 수선공

 아티초크에서 출판된 로버트 W.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 단편선에서 읽었던 단편이었다. 딱히 공저작이라는 부분이 없던 점을 보면,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소설이기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제목답게 개인의 명예에 관련이 있어 보였다. 작중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의 생각이나 행동, 그리고 자신은 물론이고 아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하면 왜 그런지 근거를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뉘앙스로 느끼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그저 개인을 광기로 몰아넣는 공포를 그린 것일 수도 있지만, 광기의 종착점이 명예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뒤틀린 명예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자기 생각과 일치하지 않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곧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도 곧 남 탓, 자기 명예를 뻇으려는 의도라 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명예라는 것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광기의 끝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앰브로스 비어스_양치기 하이타

 명예 수선공과 마찬가지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소설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카르코사와 하스터가 먼저 언급되서, 위의 명예 수선공으로 전파되서 다시 러브크래프트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신화적인 내용과 교훈적이라는 점에서 코스믹 호러와는 거리감이 있다. 다만, 신을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일은 다소 섬뜩한 부분이 있었다.
 이걸 보다보면 도대체 체임버스가 어떤 부분에서 하스터를 노란 옷의 왕과 연결시킬 생각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여기의 하스터와 노란 옷의 왕 하스터는 전혀 다른 이미지 상인데. 결론은 지금의 하스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체임버스의 공이 더 컷다는 것일지.
 
돼지_윌리엄 호프 호지슨

 유령 사냥꾼 카낙키 시리즈에 해당되는 단편이다. 정통 탐정에 오컬트를 넣었다니 심령탐정이라 해도 될 법하다. 국내에 들어온 이 작가의 책이 <이계의 집> 밖에 없어서 이 시리즈는 물론이고 다른 것도 더 알아 볼 수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생각보다 긴장감이 있었다. 뭔가 과학적인 장비로 미지의 존재에 대항하면서, 그것 역시 완벽하지 않은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 계속된다. 거대한 저택이나 유령선 같이 큰 곳에서도 오컬트적 존재와 싸우는 게 스케일이 큰데, 여기서는 방 안에만 있었는데도 카낙키가 궁지에 몰릴 지경이다. 다른 사건들이 많이 언급되서 이 카낙키 시리즈에 대해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좀 아쉬운 게 있다면, 카낙키가 단신으로 미지의 존재와 맞서는 점과 그걸 후기로 들려주는 1인칭적인 전개다. 카낙키 외에는 의뢰인 밖에 사건에 연루되지 않기 때문에(그마저도 여기서는 혼수상태다.) 외적인 설명이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른바 왓슨 역할의 묘미는 비범한 주연의 행동이 보통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대신 알려주는 것이다. 카낙키를 보면 분명 보통 사람 눈에는 엄청난 인물이다. 이 인물 자신이 1인칭으로 모든 걸 알려주는 걸 본다는 건 그냥 독자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작중 다른 이의 시선에서 하는 부가 설명 없이. 그렇기에 이 카낙키에 대해서 다소 정리되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버트 E. 하워드_검은 돌

 러브크래프트의 가까운 지인이라 그런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느낌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금서에 관한 서술이다.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은 여러 단편을 둘러봐야 이력이 들어나고는 하는데, 여기의 검은 책(무명 제례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은 약간의 이력이 존재해서 금단인 이유를 알고 들어간다.
 광기어린 고대의식 장면이나 거대한 미지의 공간을 보면 <크툴루의 부름>에서 나온 크툴루 교단과 르뤼에가 떠오를 정도다. 다만, 검은 돌은 지금은 사라진 흔적을 찾는 탐사 방식이라 영향력 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아서 매컨_검은 인장의 소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 특징이다. 제 3자의 시점으로 어떤 인물에 대한 부분을 보여주며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를 조성하는 분위기인데,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힘들다가 후반에 전부 설명해주기 때문에 초반을 읽는 것이 무척 힘들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게, 이 소설상 모든 사건에 직접 개입된 인물을 제 3자의 시점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보며, 러브크래프트가 굳이 1인칭을 고집한 이유가 이러한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읽기 힘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인데, 그걸 제 3자의 시점으로 나타낸다니. 차라리 한 명이 점점 미처가는 걸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더 몰입하기 쉬울 듯 하다.
 주로 고대의 퇴화된 인류의 하위 분류가 현대까지 생존해 있다는 가설이 중심이다. 진화도 나름대로 생물학적인 면에서 공포가 될 수 있는 사례를 본 적이 있어서, 그 반대의 퇴화도 상당한 공포라는 생각이다. 그 둘의 공통점이라면 현재의 인류가 절대 상상하지 못할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_사탐프라 제이로스의 이야니

 로버트 E. 하워드와 같이 러브크래프트와 가까웠던 인물인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을 보여준다. 하이퍼보리아라는 가상의 섬으로 경이로운 장면을 나타낸 것만으로 압도적인데, 여기에 우주적 존재까지 나타나 공포 그 자체였다. 처음 배경에서 제대로 분위기를 몰아가기 때문에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는 배경구성부터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토구아가 처음 언급된 소설이라는데, 첫 등장치고는 상당히 강렬했다. <더니치 호러>의 요그 소토스, <광기의 산맥>의 쇼거스가 등장할 때 만큼이나 끔찍해서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지인 답다는 생각이다.

헨리 커트너_공동묘지의 쥐

 영미 공포소설을 접하다보면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게 쥐다. 게다가 데뷔작인 경우도 종종(이 소설과 제임스 허버트의 쥐) 있어서 서양에서 쥐라는 존재가 흔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럽 중세의 흑사병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체로 쥐를 이용한 공포는 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쥐가 아닌 경우와(러브크래프트의 벽 속의 쥐) 진짜 쥐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쥐의 범주를 넘어선 쥐인 경우(스티븐 킹의 철야 근무, 1922, 제임스 허버트의 쥐)로 나눌 수 있다. 공동묘지의 쥐 같은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
 많은 쥐 공포를 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미 보았던 형태의 공포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땅굴이라는 점이다. 깊은 땅굴 속에서 사투를 벌이기 때문에 폐쇄 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다. 좁은 곳에 갖힐지도 모르는 마당에 수를 알 수 없는 공격대상의 위협까지 있으니 공포는 배로 커진다.
 땅굴이라는 특성을 빼면 흔한 쥐 공포로 볼 수 있지만, 공동묘지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에 관해 상세히 나오는 부분으로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은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어빈 코브_물고기 머리

 기괴한 호수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기괴한 인물이 눈에 띄는 내용이다. 특히 작중에 통칭 물고기머리라 불리는 인물은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작중의 물고기머리는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인데다 기괴한 점만 빼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던 인물이다. 보통 코스믹 호러에서 이런 인물일 수록 수상하거나 남 모르게 피해를 주고는 하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그런 인물을 건들였다가 초자연적인 공포를 겪는 걸보면, 결론적으로 물고기머리가 나쁜 놈이 아니라 먼저 시비건 사람이 문제가 된다. 이걸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드 던세이니_노상강도

 시적인 느낌 때문인지 에드거 앨런 포의 <레이븐>에서 느꼈던 심연의 공포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특히 과거의 노상강도가 처벌받고 어떻게 방치되어 있는지 나타나는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분명 현실의 사람이 벌이는 일인데도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라 노상강도의 시체가 있는 거리인지, 아니면 노상강도라는 명칭으로 불린 죄인이 있는 죽음의 세계인지 해깔렸다. 분위기는 무서운 편이지만, 어딘가 밝은 느낌도 있어서 러브크래프트의 드림랜드 관련 소설과 비슷했다.

엘저넌 블랙우드_버드나무

 고대 유적이나 금단의 지역에 들어갔다가 처참한 일을 당하는 게 코스믹 호러의 대표적인 구성이다. 이 버드나무도 맥락상 비슷한 범주라 할 수 있지만, 약간의 경계가 있어 보였다. 코스믹하면 우주까지 날아가버린 경우가 많은데 버드나무의 미지의 존재는 우주나 다른 세계라는 묘사가 있었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가까워보였다. 이런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예를 들자면 스티븐 킹의 <정원사>, <옥수수 밭의 아이들>, <높은 풀 속에서>가 있다.
 초자연적 현상의 존재를 회피하려는 분위기도 있어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충돌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게 분명 현실적이지 않은 무언가에 둘러 싸여 있는데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내가 그런 거다, 내가 하고서 깜빡했어,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이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현실주의자의 무의미한 회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뻔히 보이는데도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은 모습이라 차라리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처럼 미처버리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앞에 두고 계속 외면하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건 없을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형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과거는 때때로 현재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저 기분 나쁜 추억 정도로 생각나면 모를까, 현재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면 악몽 그 자체다. 거기에 그 과거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상대가 아는 나의 과거. 이런 게 과거의 그림자라는 것이 아닐까?

 살인을 부르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 그 4번째인 인형관. 외형적인 면부터 보자면 구조나 스케일부터 남다른 수차관과 미로관에 비하면 평범한 축으로 보였다. 십각관도 특정 도형 형태라는 점을 빼면 약간은 평범한 축이긴 하지만, 인형관은 과거와 현대 양식이 결합된 점 외에 별다른 외적 특징이 없고 이전 작품과 달리 도심 속에 위치해 있어서 고립된 환경 같은 것에서도 벗어난다. 그래서 미로관까지의 이전 작품들과는 약간 이질적인 분위기다.

 화가 히류 소이치는 연락을 끊고 살던 아버지가 살다 돌아가신 교토의 저택으로 어머니와 이사를 오게 된다. 일본 전통가옥과 서양식 저택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만으로도 기묘한데, 조각가였던 아버지가 만든 기괴한 마네킹이 저택 곳곳에 있는 탓에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한편, 거리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이 이어지고 소이치에게도 의문의 살해위협이 다가오는데...

 주연 인물인 히류 소이치가 화가인 점과 약간 고립적인 면을 보면 수차관에서 나오던 후지누마 기이치와 비슷해 보였다. 뭐, 내용상 수차관과의 약간 연관성이 있어서 노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전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상당한데, 가장 크게 두드러진 점은 흔한 저택 미스터리 형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보통 저택 미스터리하면 외딴 저택의 집 주인이 사람들을 초대하고, 모두가 모인 상황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져 거기에 우연히 탐정에 해당되는 인물이 있어서 사건을 수사하는 구조다. 그런데 인형관은 시작부터 그 반대에 해당되어 보였다. 주연인 히류 소이치가 집주인이나 마찬가지지만, 그가 집에 오기 앞서 손님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먼저 있는 것이 그렇다.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처음에 원래 집 주인에 해당되는 인물인 아버지가 있었을 때는 보통 저택 미스터리 구성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 주인이 히류 소이치로 바뀐 시점에서는 반대에 구성이 된 것뿐만 아니라, 소이치도 집에 대해 모르는 상태이니 소이치는 집 주인이자 동시에 손님에도 해당되는 기이한 위치라는 생각이다.

 이렇다보니 저택 미스터리 치고는 다소 낯선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연인물의 1인칭으로만 전개되서 다른 인물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고, 직접적인 탐정역할이 등장하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가 무엇인지 해깔리게 한다.

 사건 역시 세세한 느낌보다는 어딘가 한정적인 장면만 보여주고,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자잘한 사건만 벌어지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추리의 단서를 찾아야 하는지 답답할 것이다. 이걸 보면서 저택 미스터리가 왜 개방적인 곳에서 벌어지지 않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택 안의 용의자도 신경쓰이는 판에, 의외의 인물 몇몇이면 모를까 불특정 다수의 외부인까지 용의선상에 올라가는 것만큼 복잡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형관은 정통 저택 미스터리에 벗어난 만큼, 추리나 사건을 보는 시점도 정통적인 방법과 다르게 보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냥 작가가 벌여놓은 판이 어떤 구조인지 지켜보는 것이 더 편하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이질적인 작품답게 결말 역시 상당한 충격인데, 호불호가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모든 가정과 사실을 전부 파괴하고 나온 의외의 결말. 또는 나름 긴장감 있게 만들어 놓고 기대를 벗어난 어이없고 허무한 결말. 이 때문에 이 작품이 관 시리즈 4번째 작품이면서도 미로관 이후의 텀으로 만든 외전 같기도 한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빨강머리 앤은 그냥저냥 보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다. 재미로 본다기 보다는 명작특선이라는 이름답게 그냥 본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앤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책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을 즘에야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이고, 어린 시절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앤이라는 여자의 일생을 그린 내용이라는 걸 알았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고 어린 시절 이후의 앤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속 빨강머리 앤의 이미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뭔가 인상적인 이미지라는 생각이었어도,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감성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랐다. 그렇게 깊은 생각해 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이 에세이를 통해 그 감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이 되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가 신기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몰라봤다는 게 안타까웠다. 분명 어린 시절에도 들었던 말이어도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세월의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나에게 편견이나 제약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앤이 하던 말은 어린 나에게 당연한 말, 당연한 인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여러 편견과 제약에 나를 찾지 못하는 지금에서는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이렇다는 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은 것이 많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책에 같이 수록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장면 하나하나도 예전의 그 느낌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 이미지는 누가 보기에도 화질이 좋지 않게 실려있다. 이게 지금의 시선에서는 좋지 않게 보였는지 화질 좋지 않은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모양이다. 빨강머리 앤 외에도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메이션을 접해본 입장에서는 그 시대, 그 시절의 이미지를 그대로 실어서 그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고전작품을 화질 좋게 리메이크해서 원작의 분위기를 망친 사례를 종종 보았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빨강머리 앤의 이미지는 비록 화질이 좋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오리지널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어 비슷한 다른 걸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빨강머리 앤을 다시 돌아보며 가치의 소중함,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길, 세상을 넓게 보는 등, 심각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앤의 머리가 빨강머리면 어떻고, 내가 살아가는 게 이 모양이면 어떻다는 건가. 어차피 남이 뭐라해도 내가 사는 거고, 내가 받아들이는 건데 굳이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