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6
장은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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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면 놀이

 어릴 때부터 몸이 성치 않았던 나는 자신의 재력을 들먹이며 떵떵거리는 할아버지로 부터 6.25 시절 방문했었던 펀치볼이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듣게 되는데...
 6.25를 배경으로 한 사건을 다룬 내용으로 산간지역의 척박함과 고립감 속에서 나타난 충격적인 광경이 정말 놀라웠다. 무엇보다 미지와 실체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면서 뭐가뭔지 알 수 없게 만든 분위기는 돼지가면 놀이의 섬뜩한 부분적 실체는 전쟁보다 더 참혹하다는 감상을 느끼게 했다. 공포로서 돼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만, 여기서 들려오는 꿀꿀 소리를 듣다보면 돼지가 이렇게 무서운 동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제목과 작중 언급되는 돼지가면 놀이가 어쩐지 인터넷에서 본 괴담인 "소의 목"이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이걸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숫자 꿈

 언제나 현실을 추구하던 회사원 강에게 어느 날부터 의문의 숫자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걸 읽고 정말 별생각이 다 들었다. 진짜 이게 무섭다고, 공포라고 생각하고 쓴 게 맞는지. 거기에 내용에 나온 것 대부분이 어디서 많이 본 것들 투성이라 짜집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뭘 보고 이걸 공포소설이라고 선정한 건지. 단편선 사상 최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용도 그렇게 긴장감 있지도 않았다. 이런 죽음의 예언 같은 내용은 죽음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등의 긴박함이라던가, 예상도 못한 죽음에서 오는 섬뜩함이나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을 법 한데, 이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단조롭고 진부하기만 할 뿐이다. 그냥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게 설정했는지 알려주기 위해 단편소설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공포모음집이 더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당 아들

 무당 어머니의 손길을 피해 교도관으로 취직한 영민. 첫 근무 날, 영민은 순찰 도중 18번 방에서 목을 매단 수감자를 목격하게 되는데...
 교도소를 배경으로 현실범죄에 대한 고찰을 느끼게한 내용이었다. 교도관이 어떻게 근무를 하는지, 대체로 교도소가 어떻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잘 나타나 있었다. 다만, 너무 세세한 감이 약간 있어서 살짝 지루할 뻔했다.
 내가 봤을 때는 제목과 내용이 큰 괴리감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무당 아들이라는 제목과 교도소, 그리고 현실 비판은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처음에 무당 아들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귀신 얘기라고 확신했는데, 알고보니 성격이 전혀 다른 내용이였다. 그래서 이 무당 아들이라는 요소를 빼고 교도소 관련 내용으로 계속 밀고 갔으면 어이없는 감상없이 충격적인 내용이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무당 아들이라는 요소를 유지하고 제목만이라도 교도소와 관련되게 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마 귀신 얘기인줄 알고 봤더니 갑자기 사회훈계가 나와서 많은 이들이 실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여관바리

 출장차 대전에 온 나는 비 속을 뚫고 어렵사리 낡은 여관의 방을 구하게 되고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딘가 전형적인 인터넷 괴담류 같은 느낌이나 단순히 느낌만 그럴 뿐이었던, 나름대로 신선한 내용의 공포소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무서운 건 아니다. 허름한 여관, 으스스한 느낌. 인터넷 상의 폐가체험 내용의 무서운 이야기 같은 글에서 많이 볼 법하나, 나름대로 작가 만의 스타일로 나타낸 공포가 보여서 그렇지, 이런 게 없었다면 숫자 꿈과 하등 다를게 없을 뻔했다.
 신선하다고 느낀건 토속신앙에서 다루는 가신(家神)이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에서 나왔듯이 가신이라 해도 사연이 있을 것이고, 아무리 가신이라 할지라도 귀신은 귀신이기에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것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작가 소개란에 나온 말이 정말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낚시터

 금연 차 방문한 낚시터에서 나는 기묘한 생명체를 낚으려다 손가락 하나를 절단 당한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잘린 손가락은 집에 나타나고, 다시 손에 붙기까지 한다...
 작중 분위기라던가 느낌으로 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과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외진 마을과 출처불명의 지역, 기묘한 사람들, 그리고 미지의 생명체. 거기에 결말까지 치자면 해안가 마을이 아닐 뿐이지, 거의 인스머스의 그림자 같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장점이면서 큰 단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이건 인스머스와 비슷하다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수생괴물의 이미지라는 게 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데이곤처럼 느껴지는 건 내 개인적인 느낌인 것인지...

며느리의 관문

 재벌가의 며느리로 들어가게 된 은혜는 결혼식 전 회장님을 뵙기위해 동생과 함께 저택으로 향한다. 문제는 남자친구에게 돌아가셨다는 어머님이 살아있다고 듣는데...
 흔해빠진 재벌가 얘기 위에 SF스러운 공포를 뜸뿍바른 느낌이었다. 영생과 관련된 것이라 그런지 재벌가란 내용틀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는다. 기업가 내에서 바라는 영생을 뒤틀리게 나타낸 것 같은 느낌과 이 영생의 부작용을 보면서 사람의 기술이 언제든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고 느꼈다. SF적인 공포도 공포였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신데렐라 같은 것이 현실에서도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도 나름대로 심적 압박을 주기에 충분했다.

헤븐

 아는 선배의 별장으로 향하던 중, 길을 잘못든 미라. 빗 속에서 차가 퍼져버린 상황에 근처 별장을 찾은 미라는 그 집의 부부와 집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전형적인 외진 곳에서 마주친 미친 살인마의 집 같은 구조로 보이나 역시 매드클럽 소속의 작가분다운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동안 봐온 이 작가 분의 스타일대로 역시나 슬래셔 영화 같은 거침없는 느낌과 스릴은 여전하다. 흔히 이런 슬래셔 느낌은 공격하고 피하고, 반격하고, 또는 죽이고 하는 전개가 나오고 뒷마무리가 허술하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 분처럼 슬래셔 느낌을 유지하면서 뒷마무리까지 깔끔한 것은 처음 보았다.
 끝으로 한 사람의 트라우마를 이렇게 심도있게 표현한 것에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로 연결된 다섯 사람. 드디어 얼굴을 마주보게 된 이들은 정작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중,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예전에 발생한 캣쏘우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느껴졌다. 긴박한 전개와 약간 스릴있어 보이는 느낌 끝에 있는 씁쓸하면서도 시원한 마무리가 일품인 것 같았다. 동물을 학대하는 자의 심리라던가, 동물을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 간의 충돌로 이어지는 구성은 정말 좋았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스릴러로서는 모를까, 공포로서의 면모는 약간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토

 다이어트를 하던 나는 오래 전, 뚱뚱하던 친구가 살이 빠져 나타난 걸 보고 경악한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매일 역한 냄새가 나는데...
 현대에 다이어트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면서 공포로서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내적인 요소가 공포로 작용해서 그런지 마치 크리처물 같은 상상하지 못한 공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흔한 드라마를 보는 듯한 전개라서 식상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파리지옥

 동창회에 갔다가 필름이 끊기고 정신을 차린 나는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집으로 가기위해 나는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가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는데...
 호스텔의 편의점 버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는 명백하나 심리적으로는 그 위치가 왔다갔다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추악함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다. 마치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초창기 작품들처럼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공포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방심하는 순간 그대로 서서히 잔혹하게 죽여가는 파리지옥. 자연에서 보면 별거 아니게 보이겠지만, 이게 사람으로서 나타낸다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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