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물랭의 댄서 매그레 시리즈 10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따분한 삶을 벗어나 모험을 즐기고 싶다고 여기는 이들은 많다. 뭔가 멋져 보이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는 그런 화려한 인생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그 만한 여유가 되는가. 이걸 통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모험으로 인해 발생할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그저 특별함에 취하고 싶어서,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서 책임 없이 즐긴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무엇에 휘말리든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는 말이다.

벨기에 리에 주에 위치한 카바레 클럽인 게물랭에서 델포스와 샤보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몰래 숨어 있다가 금고를 털기로 계획한다. 그런데 불 꺼진 가게 안에서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어떤 외국인 손님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곧바로 도망치게 된다. 다음 날, 신문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고 게물랭도 평소와 다름 없이 영업 준비 중인 모습이라 델포스와 샤보는 당황한다. 샤보는 중요 속보가 나오지 않는지 계속 기다리던 중, 동물원 잔디밭에 있던 트렁크 안에서 어제 목격한 시체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매그레 반장이 아닌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또 다른 식으로 낯설게 보인다. 분명 그 특유의 위압적인 특징을 가진 실루엣이 돌아다니는 듯한 행적이 있긴 있다. 하지만 잠깐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 나타나기만 할 뿐, 작중 중반까지 제대로 모습을 들어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의문만 더욱 커져 간다. 매그레 반장은 벨기에까지 와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게물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시체 이동의 문제에다 사건 관계자들 간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범인의 동기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가운데, 살해 당한 피해자 역시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여기에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느낌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이 안 되다 보니 더 그렇다. 단순히 밤 문화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고 하기에 어딘가 일상적이지 못한 면이 있어서 그렇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인물이 알고 있던 사실이 잘못된 것인가. 무얼 숨기려 하는 것인가. 이렇게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그레 반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교통 정리에 들어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매그레 반장은 사건의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었지만 실상은 무대 감독 같은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봤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대 위 배우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하나의 배역처럼 숨어서 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며 변수를 던지는 관찰자. 평소 같다고 할 수도 있으면서 타인이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는 인상이다. 갈수록 뭔가 반장의 스타일과 맞지 않은 사건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소박한 드라마 때문이라는 건 알아둬야 한다. 그러니까 일개 그저 그런 진부한 일상과 수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숨어 있던 비일상이 예상치 못하게 충돌해서 발생한 혼란이라는 것이다.

다소 큰 사건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난 드라마와 핵심 사건은 굉장히 어처구니 없고 시시한 것이었다. 아니 딱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도 발생 중인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거라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철 없는 미성년자나 청년의 일탈 문제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깟 화려하고 특별하게 사는 게 뭐라고. 몸 상태도, 정신 상태도 다 버려가면서 저렇게 병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걸까. 오만함에 빠져 책임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고, 정도라는 걸 생각하지 않으며,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에 망가지는 건 본인인데.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결국은 부모라는 것도 크게 놀랍지도 않다. 일탈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친구를 잘못 만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부모 둘 중 하나니까.

특별함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 밖에 없던 게물랭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있던 건 사실상 댄서 밖에 없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그 댄서에게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긴 하겠다. 그저 돈벌이 하는 직장이자 매일 보는 일상적인 풍경이었으니까. 그런 곳에 잠깐도 아니고 매일 같이 죽치고 앉아 있는 이들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한순간의 화려함은 잠깐일 뿐, 영원하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무언가 열정적으로 불태우고 싶다면 이상한 길로 빠지지 말고 지금 사는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다른 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보일 것이 당사자에게는 별거 아닌 따분한 인생이듯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특별하게 보일지 누가 알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