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목 매그레 시리즈 9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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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나타내는 무언가를 정하라고 하면 보통 무엇을 떠올릴까. 보통은 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것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긴 있다. 늘 있는 일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함께하는 무언가. 그게 없어지면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될 정도로 친숙한 것. 사실 뭐가 됐든 상관 없는 일이긴 하다. 중요한 건 이거다. 일상이나 다름 없는 무언가가 영원히 사라질 상황에 처하면 참을 수 있느냐. 대부분은 초조하다 못해 불안해 하고 급기야 절망에 빠지고도 남는다. 보통은 이걸 극복하려는 힘겨운 시도를 하겠지만, 오히려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세상 모든 것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뒤틀린 마음을 가졌다면 말이다.

생클루에서 벌어진 미국인 노부인과 하녀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외르탱. 이 사건을 해결했던 매그레 반장은 외르탱이 범인이라는 물증은 있지만 동기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런 탓에 점차 그가 무죄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자, 자신의 직위를 걸고 사형 전날 밤에 외르탱을 일부러 탈옥 시켜 지켜보기로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신문사로 보낸 편지로 인해 계획된 탈옥이라는 의혹이 보도 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외르탱이 숨어 있던 여인숙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주하는 바람에 놓치고 마는데...

잘못된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점. 매그레 반장의 경찰 경력이 걸린 위기. 일상이라는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매그레 반장 역시 여유를 갖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니 이래저래 긴장감이 감돌아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분위기가 다른 내용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는 상태인데 무엇보다 무고할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매그레 반장을 도발하는 듯한 일만 벌어지니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간혹 탐정에 해당되는 캐릭터와 라이벌처럼 맞먹는 인물 간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는 작품이 종종 있는데 이 작품이 딱 그렇게 보였다. 사건 관계자들의 배경을 파악하는 매그레 반장의 스타일과 대립 구도를 이루듯 상대도 비슷하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인생을 분석하며 날카롭게 파고들 기회를 노리는 스타일이라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된다. 서로의 심리를 파악하고 무슨 짓을 벌일지 대응하는 대결이나 마찬가지라 증거나 단서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그렇다. 무언가를 발견하더라도 이게 대체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뻔히 눈 앞에 범인이 있고 일부러 증거나 단서를 흘리고 다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매그레 반장의 사건 속에는 다양한 인생에 대한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토록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평소의 수사 방식도 통하지 않고, 오히려 농락 당하기만 해서 사건의 진실 만큼이나 파악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이 범죄에 다다르기까지 있었던 과정이자, 이럴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건 그 어떤 범죄라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간혹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타인을 해치는 범죄 같은 경우 말이다. 현대에도 자주 일어나는 범죄니 낯설지 않을 것이다. 설명이 안 되는 이걸 규명하기 위해 성급한 억측이 난무하고는 한다. 무엇 탓이다, 무엇이 사회를 어지럽힌다, 무엇이 사회악이라고 하면서. 이런 것들은 대부분 가까이에서 뻔히 보이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만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이 사건을 설명하려면 하나의 비유를 들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표지에 있는 커피 잔이 적절하다고 본다. 커피 한 잔. 근현대에 들어 사람의 인생에서 여유로운 순간 하면 자주 떠오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은가. 하루의 시작이라는 의미라 할 수도 있고. 요즘 시대에 카페 하면 가볍고 흔한 이미지지만 매그레 반장이 있던 시대에는 다소 특별하게 묘사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 같은 분위기라 그 안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사람이 된 것 같은 특별한 곳이었다. 거기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이란 상당한 가치가 있다 할 수 있다. 이 특별해 질 수 있는 순간을 갑자기 박탈 당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절망을 넘어 악의적인 분노가 생길 만도 하다.

이 분노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살고 싶다. 열심히 살고 싶다. 그런데도 할 수가 없다. 수 많은 인생들이 교류하고 살아가는 자리에 내 것은 없다. 내 커피 한 잔 만은 없는데 다들 즐기고 있다. 내가 즐기지 못할 바에는 다 뒤엎어버리고 싶다. 참으로 악독하다고 할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 인생이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겨우 커피 하나, 아니면 커피 하나의 가치나 다름 없는 무언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진범도 그렇고 범인에게 엮인 사건 관계자들도 말이다. 차이점이라면 사건 관계자들은 그저 가지고 싶었고, 진범은 가질 수 없기에 이용하고 부숴버릴 의도였다는 점이다.

제목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남인 사람들끼리 목을 걸고, 더 정확히는 인생을 걸고 벌어진 사건이라 해결이 돼도 뭔가 시원치 않은 인상이 남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계속되기 위해 타인의 목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범인에게 놀아난 이들과 마찬가지로 범인 역시 잘 살아 보겠다는 인생이 있었다. 매우 지독한 죄질 때문에 동정 받을 가치가 없다고 해도 그 역시 커피 한 잔을 원했을 뿐이다. 다른 욕심도 아니고 남들 만큼 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아예 찾지 않고 스스로에게 고립되어 파멸을 자초했다. 원하던 이상이 턱 없이 높았던 걸까. 아니면 세상의 벽이 너무 높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걸까. 무고한 이는 구했지만, 어쨌든 하나의 인생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 무거운 공기는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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