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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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복잡해 보이는 사건. 그 어떤 가능성도 부정 되는 전대미문의 완벽 범죄. 미스터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진상을 보면 너무 과장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별거 아닌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 편이다. 과연 이걸 만족 시키는 미스터리란 존재하는 걸까? 있다면 과연 어떤 식일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매우 어려워 보이던 것이 별거 아닌 경우가 있다면, 별거 아닌 것이 매우 어렵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 작품의 메인 트릭은 추리 관련 작품을 많이 본 경우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름이 아니라 유명 추리만화인 <소년 탐정 김전일> 초창기 연재분에서 이 소설의 트릭을 도용한 건으로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단한 트릭의 원조인 소설은 어떤 내용일지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꽤 늦어진 지금에야 읽게 됐다.

점성술을 맹신한 화가 우메자와 헤이키치는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동기를 가지고 자신의 딸들을 토막살인 한다는 아조트 계획을 기록으로 남긴다. 문제는 실제로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헤이키치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 이후였다. 게다가 헤이키치 살해와 아조트 살인 중간에 벌어진 수상한 강도 살해 사건까지 더해 총 3개의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관련 인물들에게는 전부 알리바이가 존재했고, 그 어떤 가능성 모두가 부정 당한 채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이 이야기를 사건 관련자의 가족으로부터 듣게 된 점성술사 미타라이 기요시는 사건 해결에 도전하게 되는데...

이미 벌어지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른 미제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라 그런지 시작부터 꽤 빠르게 사건에 대한 검토로 들어간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추리와 부정을 연이어 보여주며 만만치 않은 사건임을 보여준다.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는 해석. 점성술, 연금술 같은 상징성 같이 꽤 어려운 내용까지 나와서 사건의 복잡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스토리 구조만 보면 쓸 때 없이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작중에서 벌어진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자세한 조사 자료와 해석이자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이 꽤 길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단서를 찾아 해매는 과정인 중간 부분은 불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마지막 해결과 해석에 대한 부분은 핵심 트릭을 빼면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이 작품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유명세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걸 먼저 생각해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저 책 분량만 늘리려고 장황하게 했는가, 아니면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장황하게 만들었는가.

이 소설의 주연인 미타라이와 이시오카의 관계를 보면 영락 없는 홈즈와 왓슨이다. 그런데 정작 사건 수사를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주는 건 왓슨 포지션인 이시오카고, 정작 홈즈 포지션인 미타라이는 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스토리 상에서 너무 동 떨어져 있다. 탐정의 멋진 활약상을 기대하는 경우라면 미타라이를 보고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대체 뭔가 싶은 인상을 넘어, 그저 마지막에 정답지만 보여주는 이름만 주인공인 조연 내지 단역으로 보일 만도 하니까. 하지만 이게 과연 작가가 대충 만든 설정이라 이럴까?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홈즈와 왓슨이라는 정석이자 진부한 구도를 작가 만의 스타일로 재정립 시킨 것이 아닌 가 한다. 왓슨 포지션이 그저 독자의 입장을 대변한 걸 넘어 표면적인 가능성과 해석의 극한을 끌어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후에 나올 해답의 충격을 극대화 시킨다고 본다. 반면 홈즈 포지션은 사건 개요와 작은 힌트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사건도 별다른 노력 없이 해결이 가능하다고 어필하며 희대의 천재라는 걸 보여준다.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에서 다루는 건 미제사건이다 보니 더욱 노력할 필요가 없게 나타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간다면 모를까, 시원시원한 과정이 없어서 답답하고 해결이 뜬금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면 별다른 재미를 못 느낄 만하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과정과 진실을 보면서 불가능 범죄라는 것이 진짜로 치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핵심을 보지 못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사건 안에는 이런 저런 요소가 많고, 그 중에는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람이 벌였는지 의심될 정도로 자극적인 면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범죄 사건을 접하면 이 자극성에 제일 먼저 휘둘리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 흥미를 넘어 사건의 본질을 자극적인 부분에 맞춰 해석하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 점성술 살인사건 역시 그렇다. 온갖 오컬트 요소와 상징성, 잔인성, 음모론이 판치는 형국이지만, 진상을 보면 그저 현실적인 범죄다. 이 현실성을 가려버리는 건 다름이 아니라 곁가지를 계속 쌓아 올리는 대중의 시선이다.

과연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흐름을 이끌어낸 역할을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문제 풀이가 전부라는 걸로 보일 수 있으면서, 예리하게 맹점을 지적해 치고 들어가며 선사한 놀라움은 큰 충격을 줄 만 했을 것이다. 비록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뒤늦게 재평가 된 경우지만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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