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작은 세상은 서로가 매우 가까운 만큼 그 이면에 숨은 그림자도 짙다. 보통 외부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내부 결속은 잘 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부적인 문제가 더욱 심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아는 사이일 수록 쉽게 다툼이 벌어지고 감정이 상할 수 있다고. 외진 시골에서 이런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마당에 외딴 섬이라면 어느 정도일까. 그야말로 오래도록 고이고 묵혀 있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한 문제일 것이다.

귀환선 안에서 죽은 전우인 기토 치마타의 유언으로 세토내해의 옥문도를 방문하게 된 긴다이치 코스케. 본가 사람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외지인에 대한 배척은 없었지만,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섬의 분위기 속에서 코스케는 떠올린다. 자신이 죽으면 여동생들이 살해 당할 거라는 기토의 유언을 말이다. 이 불길함은 결국 기토의 장례식 당일에 현실이 되는데...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봤다. 대부분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언급되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김전일은 많이 봤어도 긴다이치 코스케는 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신간이 많다 보니 고전 작품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꽤 늦게 접하게 된 긴다이치 코스케는 꽤 친근함이 넘치는 인물이다. 이 친근함이란 겉모습에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탐정의 이미지로서도 그렇게 보인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나타나 외부인으로서 바라보는 탐정이 아니라, 그 장소에 녹아들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이해하고 슬퍼해주는 내부인 같은 느낌이다. 괜히 일본에서 오래도록 국민 탐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추리소설하면 자주 나오는 무대인 섬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다만 여기서는 인적 없는 섬이라던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고립됐다, 하는 설정은 아니다. 마을을 대표하는 가문과 절이 존재할 정도로 마을 규모가 어느 정도 되고, 육지와의 왕래가 끊기지 않은 상태라 현실에 있는 섬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거다. 오래된 인습. 아무리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금방 바꾸기 쉽지 않은 것도 있는 것이다. 이게 옥문도라는 섬의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에 쌓여온 역사라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사건이 미리 예고가 되어 있고, 옥문도라는 섬 특유의 불길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빨려 들어가듯이 보게 된다. 다소 시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간 문장에 대화문이 길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잦은데도 말이다. 이 으스스한 분위기는 대체로 이렇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멈춰야 하는데 결국 같이 말려들고 있다는 긴장감과 그 이후에 가라앉듯이 뒤따르는 무기력함.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상황으로 인해 몰려오는 소름. 그 장소에 존재하는 특유의 분위기에 휩쓸려 발생하는 소용돌이. 공포소설이었다면 비현실적인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인 이상 현실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시작은 다소 섬뜩함이 있었지만 결론만 보면 우연과 복합적인 상황이 겹치고 겹쳐 발생한 엄청나게 비극적인 사건이다. 트릭도 트릭이지만 이 사건에서 주목하게 되는 건 두 가지다. 범행의 대담함과 동기. 진상만 보면 트릭 자체의 놀라움은 있어도 크게 복잡한 건 없다. 오히려 이걸 아무렇지 않게 실행하는 대담함이 놀라울 정도다. 동기도 그렇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이해 불가능한 살해 동기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옥문도의 문화적 환경이다. 외부와 교류가 있더라도 변함 없는 섬 내부의 인과관계. 아무리 해도 무시하기 어려운 시골 특유의 미신을 잘 믿는 특성. 섬이라는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변수. 여기에 시대적 배경 또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해서 상당히 복잡하게 얽힌다. 이러한 구성이 실체를 들어낼 때는 정말 놀라운 사건이라는 감탄과 동시에 너무나 안타깝다는 감상이 동시에 나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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