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 - 1893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오스카 와일드 지음,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이한이 옮김 / 소와다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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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라고 한다면 언제나 거부감이 먼저다.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모습과 그걸 즐기는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당연할 것이다. 문학적으로 이런 주제를 다루면 이래저래 박한 평가가 따라오게 되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퇴폐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 만으로 무작정 저평가 받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긴 하다.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나타내고자 시도한 걸 퇴폐라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놓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설은 꽤 많이 읽어 봤고, 시는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하고 있는 편이지만, 희곡은 여전히 거리가 먼 편이다. 소설은 문장을 너무 어렵게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내용만 따라가며 읽기 쉬운 편이고. 시는 느낌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희곡은 뭔가 그냥 읽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오직 대사로만 진행되는 형식이라 어떤 의도로 나오는 말인지, 이게 과연 그 인물의 진의가 담긴 말인지 판단하며 읽어야 해서 그렇다. 그럼에도 희곡을 읽게 되는 건 아무래도 대사에서 느껴지는 힘 때문이라고 본다. 모든 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되는 만큼, 작은 행동이나 대사에 나타나는 표현의 깊이가 남다르다. 대체로 소설책 한 권에 비하면 희곡 하나의 분량은 꽤 작은 편임에도 이 깊이에서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희곡이 가진 힘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실감하게 되면 아무리 희곡이 어렵다는 인상이라도 보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에서 시작해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이다. 단막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 다소 반복되는 구도가 많음에도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대부분 팜 파탈로 묘사 되어 주목을 많이 받는 살로메로 인한 것이지만,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주변 묘사나 웅장한 대사들이 분위기를 살려준다고 본다.

모티브가 된 원전과 희곡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파격적으로 각색 됐는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단순히 수동적인 모습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하게 바뀐 살로메의 변화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추한 모습이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허세가 더해진 겁쟁이 같은 모습. 눈치 없는 모습. 웃기는 건 이게 스스로 파멸로 빠져드는 살로메의 행동과 함께 따라오는 모양새다. 반복되는 대사들도 가만 보면 단조롭게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로메의 파멸 행보와 매우 유사한 방향이라는 점에서 웃기게 보이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극의 흐름을 살로메 혼자서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살로메로 시작해서 살로메로 끝나는 스토리니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긴 하겠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된 대사가 많은 편이다 보니 이 비극적인 내용을 묘하게 만든다. 어떤 것은 아름답다 보니 더욱 불길하게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하게 꾸며낸 듯이 허울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아무리 아름다움을 길고 자세히 강조해도 덧없다는 듯이 보이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부분이라면 거의 마지막에 나온 살로메의 대사다. 극 중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 임에도 진심을 다 끌어낸 듯한 아름다운 묘사를 해서 그야말로 퇴폐의 끝을 보여준다. 그저 징그러운 장면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떻게 이런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 대단하기도 하다.

이렇듯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릴 만한 작품이다. 다만 개인적인 감상에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작품성 면에서는 확실하게 해둘 필요는 있다고 본다. 퇴폐적인 면이 별로라고 할 수는 있다. 그래도 그것만 강조된 극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발표 당시에도 의견이 여럿으로 갈렸지만, 지금까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남은 걸 보면 감상과 작품성은 별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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