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의 눈 바벨의 도서관 8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 최재경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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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의 세 기병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정부 기관 관리로 일하는 폰드 씨는 저명한 외교관과 함께 서로 잘 알고 있는 어느 지역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떤 사건을 언급하게 된다그 지역에는 높은 둑이 하나 있고그 위에는 사람 하나 지나가기 충분한 좁은 길이 있었다사건이 일어난 당시 프로이센 영토였고 그 둑길을 지키기 위해 서쪽에 백마기병대가 주둔한 상황이었다그곳에서 발생한 사건이란 근처 마을에 살던 폴란드 출신 시인이 처형당할 뻔했다가 살아난 이야기였는데...


 제목을 보면 성경의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묵시록의 4기수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참고로 가톨릭에서는 묵시록이라 표기하고 개신교에서는 계시록이라 표기한다.). 내용을 보면 진짜 성경과 관련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비유에 가깝다계시는 폴란드 시인의 처형기병은 프로이센의 백마기병대에 해당된다오래 전의 유럽 정치적 상황이 묘사돼서 살짝 어렵게 보이겠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서 걱정할 필요없다어디까지나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폴란드 시인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된 사건이다.


 대체로 좁은 둑길에서 세 명의 기병으로 인해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다루고 그 전말을 짤막하게 정리하는 구성이다보기에 따라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고이걸 어떻게 파악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그 심리 부분을 매우 잘 다루었기 때문에 문제없다프로이센 시절의 독일군이 어떤 분위기였고 기병대 사령관이 어떤 신념을 가진 인물인지 상세히 설명한다단순히 내면 묘사 뿐만 아니라 겉으로 들어나는 모습이나 사소한 행동도 비유를 들어 상세히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 한 명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한다고 해도 될 정도다그렇다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이렇게 상세하게 묘사된 사령관 밑에 있는 병사들은 도대체 어떤 심리상태고 어떻게 행동할까문제는 사령관 이외의 인물들은 대부분 겉으로 들어난 모습만 있을 뿐내면이 어떤지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추리 외의 부분에서는 둑길 주변을 나타내는 장면과 둑길을 달리는 기병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묘하게 환상적인 색체가 강하게 느껴졌다그저 밤 중의 늪지대 풍경에 지나지 않는 배경에서 다른 세상의 원시 자연 풍경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원초적인 두려움에서 오는 듯한 불결함이 동시에 있어서 인간이 느끼는 자연에 대한 인상이 딱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기병 역시 하나의 사물로 묘사되어 체스게임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는 부분이 묘하게 보였다사건 자체도 다시 보면 체스나 다름 없긴 하다폴란드 시인이라는 킹을 잡기 위해 머리를 쓰는 프로이센군 사령관이라는 킹의 머리 싸움.


 작중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주장이 계속 나온다지나치게 올곧고 충심이 깊은 부하가 많으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다뭔가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긴 하다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고 그 어떤 잘못 없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찬양 일색인 추종자들이런 곳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고 너도나도 완벽하게 해낸다고 설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잘 될 일도 요상하게 꼬여버리지 않을까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은가.




이상한 발소리


 상류층들에게만 개방된 선착순제 사교클럽 형태로 운영하는 버논 호텔이곳에서 급하게 신부를 찾는 바람에 브라운 신부가 방문하게 되고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호텔 사무실 안의 작은 개인 방을 빌리게 된다거기서 브라운 신부는 어딘가 이상한 발소리를 듣게 되고 호텔 안에서는 고급 식기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원제목이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인데 Innocence의 뜻이 결백천진난만이다 보니 번역서에 따라 표기가 다른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에 수록된 작품이다작중 내내 버논 호텔에 대한 부분을 꽤 상세하게 다루는 편인데사실상 그 당시의 상류층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나 다름없다평범한 사람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 브라운 신부가 우연히 방문하지 않았다면 화자가 알 길이 없었다는 둥온갖 불필요하고 허례허식인 것이 거기서는 멋과 고상함 그 자체라고 하는 등상세한 묘사 속에서 점잖게 돌려 까는 것이 예술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뭔가 거창하게 벌어진 사건처럼 보이나 트릭만 놓고 보면 엄청 사소하기 짝이 없다어느 정도 범인의 노력이 들어가긴 했지만 메인 트릭 자체는 현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이런 걸 눈치 채지 못할 수 있는지 어이없게 보일 것이다뭐 어쩌겠는가그 당시 시대의 문화가 그랬다고 하니어쨌든 이 사소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에서도 상류층에 대한 비판이 녹아들어 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이걸 예술에 빗대어 무대장치와 배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작동했는지 설명하며 앞서 말한 점잖게 돌려 까는 것의 정점을 찍어버리기 때문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브라운 신부가 발소리를 듣는 장면의 묘사 부분을 잘 보면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점차 어두워지는 방과 우중충해지는 하늘의 석양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안에서 발소리를 분석하며 사색에 잠기는 브라운 신부어딘지 모르게 고해소에서 참회자의 고해성사를 듣는 모습처럼 보인다물론 이 소설이 추리소설인 이상 이렇게 봐야한다직접 죄를 고백하고 성찰하는 고해소와 달리 이 수상한 자는 신부가 직접 죄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특이점이라면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가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것처럼 왜 그랬는지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그저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해결됐는지 설명하는 것이 전부다이것이 곧 브라운 신부라는 탐정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현실적인 사건 속에서 성격이 다른 것 같은 환상적인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스라엘 가우의 명예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브라운 신부는 친구인 탐정 플랑보가 어느 귀족의 죽음을 조사 중인 글랜가일 성을 방문하게 된다플랑보가 조사하는 것은 성주인 글랜가일 백작의 죽음이다백작은 그 동안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성을 관리하는 유일한 하인인 이스라엘 가우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으면 백작이 성에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그러던 어느 날백작의 시체가 담긴 관이 준비되고 묘지에 묻히기까지 했다하지만 정작 그 관 안에 있는 것이 진짜 백작인지 확인한 외부인이 전혀 없었다는 것인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에 수록된 작품이다오래된 귀족 가문과 성이라는 배경 탓인지 어딘지 모르게 고딕소설 같은 분위기가 먼저 느껴진다사실 사건 자체만 보면 그냥 관을 열어서 시체를 확인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하지만 브라운 신부를 비롯한 조사관들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여다보며 글렌가일 백작이라는 인물에게 접근한다시체를 확인하기에 앞서 현장조사를 한다고 할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혹시나 관을 열어서 발생할 충격적인 진실에 대비하기 위한 배경조사.


 사건 현장인 글렌가일 백작의 성과 그 주변에 대한 풍경 묘사가 꽤 웅장하다성은 마치 고딕소설에 나오는 음침함과 신비로움이 느껴지고주변을 둘러싼 숲은 예스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연의 무거움이 있는데다여기에 시시각각으로 거칠어지는 날씨까지 더해지니 흡사 종교 그림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보인다그런데 여기서 사건 해결부분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 밝아진다앞에 나왔던 섬뜩해 보이던 장소들은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곳이 되고 이건 사건의 진실 역시 마찬가지다겉으로 보기에는 그 누구도 이해 못할 괴이한 사건처럼 보였지만실상은 지나치다 못해 병적으로 순수하고 바보 같기도 한 아름다운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아폴로의 눈


 친구이자 탐정인 플랑보의 새 사무실 보러 런던으로 향한 브라운 신부신축 아파트라 그런지 입주자는 플랑보 말고는 두 집단 밖에 없었다하나는 위층에 입주한 아폴로의 사제라 자칭하는 교주가 창시한 신흥종교 사원다른 하나는 아래층에 입주한 두 자매가 운영하는 타이핑 사무실이다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무렵아폴로의 사제가 태양을 향한 의식을 거행하는 중이었고 갑자기 아파트 안에서 엘리베이터 승강구로 사람이 추락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에 수록된 작품이다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현실적인 사건인데도 태양을 숭배하는 신흥종교의 존재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분위기로 빠져들게 만든다여기에 아폴로의 사제와 브라운 신부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까지 더해져 때 아닌 종교관 대립이 발생하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사건이다그래서 이 사건이 비현실적인 사건이라고 하냐면 그건 아니다인자한 브라운 신부마저 추악하기 짝이 없다고 여기는 질 나쁜 범죄다.


 스스로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와 근거 없는 고집이 어떻게 다른지 나타나 있다의지는 말 그대로 실현 가능한 것을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다반면 고집은 노력해도 안 되는 것에 의미 없이 집착하는 것에 해당된다이렇게 보면 어딘지 모르게 서로 비슷해서 고집을 의지로 곡해하는 일이 적지 않다노력해서 이겨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근거 없는 미신에 매달려 쓸 때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어리석고 오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과 관련된 신화를 찾아보면 동경하거나 잘못 다루어서 큰 피해를 입는 내용을 종종 볼 수 있다브라운 신부 역시 이렇게 말한다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숭배하는 일에는 잔인한 측면이 있다고작중의 사건도 이렇다고 할 수 있다보이는 그대로를 믿다가 추악한 진실을 보지 못해서 추락하고만 이카루스와 비슷하다고 말이다아무리 빛이 어둠보다 신성하다 주장해도 이런 식이면 해롭게 보일 뿐이다빛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어둠이 나을지도 모르겠다어둠 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먼저겠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무엇이든 숨김없이 보이긴 한다성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말이다.




이르슈 박사의 결투


 프랑스에서 유명한 과학자인 이르슈 박사의 자택에 들이닥친 불청객 뒤보스크 대령그는 박사가 직접 개발한 기술을 독일 스파이에게 넘긴 증거가 있다며 난동을 피운다이르슈 박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사실상 결투 신청을 하고이 사건을 조사하던 플랑보에게 뭔가 이상한 점을 들은 브라운 신부도 개입하게 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지혜>에 수록된 작품이다당대의 정치적 상황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서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첩보스파이 관련 사건으로 보일만 하다그러나 브라운 신부의 시선으로 보면 이렇게 정리된다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뚜렷한 의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그 진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이렇듯 사건 자체는 해결이 되지만 왜 이런 짓을 하게 됐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브라운 신부 역시 잘 모르겠다고 하니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생각지도 못한 논점을 제시해서 꽤 놀랍다보통 정보의 혼선이 생기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논란이 발생하고는 한다대체로 한쪽이 진실을 말하면 반대쪽은 거짓이라 주장하며 충돌하는 양상으로 말이다작중의 이르슈 박사와 뒤보스크 대령이 딱 그런 모습이다그런데 브라운 신부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에 앞서 이렇게 말한다문제가 된 정보 안에 진실은 얼마만큼 존재 하느냐만약에 진실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다면 오히려 그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힌트가 된다그러니까 완벽한 거짓을 말하려면 그 만큼 진실을 많이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즉, 어설프거나 우연히 만들어낸 거짓은 일부가 사실이라도 나머지는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요즘 같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상으로 심오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진실과 거짓의 대결은 현실적인 사건으로 시작해 뜻밖의 결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환상적이다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건의 진의를 잘 모르겠다그저 진실과 거짓을 현실의 무게가 아닌 마술과도 같은 신비로움으로 보여준 특이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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