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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이제 끝났다. 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포식자도 아니었다. 나는 나였고, 파괴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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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서 폭력적인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 소녀이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가족 구성원들을 복종시키고 가정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폭력 속에서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다. 포식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똑같이 포식자가 되지 않고 그저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왕국과 사랑하는 남동생을 지켜낸다. 아주 폭력적이지만 자신의 감정 하나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왕국을 지켜낸 주인공 중 누가 진정 강한 존재인가.
소설 속 폭력적인 장면들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포기를 모르는 강한 소녀를 자꾸만 응원하게 되었다. 소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숨이 막혔다. 주인공은 이것을 ‘하이에나가 지켜보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폭력적인 아버지의 손아귀 속에 있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 어떤 장면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무기 없이, 벌거벗은 채, 하이에나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피난처에서 잠들고 싶다는 주인공의 무덤덤한 독백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편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하는 집이 그에겐 왕국 밖의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그 아이를, 마음 놓고 약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데려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