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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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부러진다. 지극한 사람이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는 까닭이다. 칼날은 예리해서 부러진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두터움을 중하게 여긴다. 신룡神龍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서롭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극한 사람은 감추는 것을 귀하게 본다. 푸른 바다는 아득히 넓어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깊은 것을 소중히 여긴다.
                                                   -<언행휘찬言行彙纂>의 한 대목

 

 동양 고전은 언제나 생각할 거리들을 툭 던져준다. 가르침을 쉽게 떠먹여주지 않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정답을 떠먹여주고 옳은 생각을 머리에 박아주는 종래의 공부와는 다른, 바로 그 점이 동양 고전의 매력이다. 예전 소크라테스도 사람들이 무엇을 물으면 답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해서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식을 담기 위해서는 정답을 외워야 하겠지만, 그 지식을 담을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과 교육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제나 동양의 고문헌들을 읽을 때에는 정답을 찾으려는 압박감을 버리고 떠오르는 그대로 느끼려고 한다.  <습정>은 동양 고전의 한 구절을 던져주고 저자의 정민의 해석을 곁들인다. 옛 문헌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저자의 해석과 자신의 해석을 비교해보는 것도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옳은 말을 줄줄 읊던 사람들이 대부분 기득권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반발심이 든다. 말씀 자체는 너무 좋으나, 내면의 고요함을 강조하면서 뒤돌아서는 성별과 계급으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가증스럽기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은 언제나 날 자라게 하지만 그런 묘한 소외감 때문에 영원히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담론이라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는 생각에서 오는 소외감. 오래전 고전을 집필하던 거장들은 한국의 어린 여자 따위가 자신의 글을 읽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들이 생각하는 ‘독자 범위’ 안에 나는 절대 포함되지 못했을 거라는 것.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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