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나한테 도대체 뭘 해주는 걸까?"
이 질문이야말로 정확했다. 질문을 바꿔서 아이를 보니 너무 웃겼다.
말 안 듣고, 고집 세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만화에 나온 애라고 생각하고 보면 행동 하나하나가 다 웃기지 않은가? 문제 행동이란 것은 따지고 보면 보는 사람과의 거리를 말해준다. 똑같은 행동도 가까이에서 보면 문제지만, 멀리서 보면 재미있다. 물론 남을 해하는 행동은 만화에서도 웃기지 않지만 말이다.
‘이 아이는 나를 웃겨주려고 태어났구나!‘
그렇게 마음먹는다는 것은 아이로부터 적정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증거다. 웃으려면 관심과 시선을 고정하고, 대신 만화 보듯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 이 깨달음은 그저 작은 출발이었다. 아이가 나를 닮은 치명적단점에 대해서 웃다 보니, 내 자신에 대해서도 편안히 웃게 된다. 이때 우연히 읽은 책이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였다. 이 책은 소제목이 끝내준 - P120
나를 웃겨주는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드디어 생각이 났다.
내가 니체처럼 강해지는 것이다!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거나 무엇을 가르치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닮은 점을 무한 긍정하는엄마가 되기로 했다.
"넌 엄마 닮아서 엄마만큼은 살 거야. 평범한 삶이라도 즐겁게 말이야..
이 이야기를 태연하게 진심을 다해 들려주는 강한 엄마가 되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강해지겠다고 마음먹으니, 그렇게 창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이조차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고, 아이가 내게 준 선물이지 않은가? 어떤 철학자나 심리학자의 이론도 ‘내 삶이 좋다.‘란 것을 아무 의심 없이 긍정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나도 내 단점을 잘 아니까. ‘나만큼 살아도 괜챦아 ‘ 라는 생각이 창피하고 어색하다
하지만 온전히 새롭게 세상에 나온 아이가 타고난 자기 본성을 마음껏 펼치게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은 그런 창피함을 넘어설 만큼 강력한 동기가 됐다 -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