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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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이 몇 개월에 불과하다는 천청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그냥 편하게 있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병으로 인해 육체도 정신도 소진된 체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그 고통을 헤아리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 [ 밤의 유서 ]의 주인공 알버트는 한때 연인이자 주치의인 마리안네에게 희귀병인 근위축성 측상 경화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기한내에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는 진단 결과를 듣게 된다. 몸이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의식은 명료하고 지적능력은 그대로 유지한 체 점차 기능을 못하는 신체 부위들로 인해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삶을 연명해야 하고 그것도 점점 여의치 않을 때가 되서야 죽음을 맞아해야 하는 결과. 마치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을 알버트는 냉정하고 직관적으로 직시한다.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알버트는 가장 먼저 자신의 아내이자 연인인 에이린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두 사람의 만남에 빠질 수 없는 호수와 오두막, 두 연인이 처음 사랑을 나눴던 오두막에 칩거한 알버트는 그곳에 있는 방명록에 밤에 쓰는 유서이자 자신의 인생 회고록을 담담히 정리한다.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왔다. 나는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시간을 살아내야 할까? 아니면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것이 더 나을까? 이 질문은 나와 혈연 관게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아픈 질문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밤의 유서 중에서


이 질문은 시한부 진단을 받은 알버트엑네 해당되는 질문이지만 나 곧 우리 모두가 받을 수 있는 질문이다. 과연 나라면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삶을 의지하며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인가?

알버트는 방명록에 글을 쓰며 자신의 인생과 삶을 회고하고 태초의 우주적 관점에서 자신 곧 자아에게로 포커스를 맞추며 포괄적인 사고를 통해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호수에 빠져 죽는 것. 하지만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 체 오두막의 옛 주인을 만나게 되고 다시금 깨달음을 얻게 된다.

" 인간은 외딴 섬이 될 수 없다. 개개의 인간은 대륙의 일부이자...."

의식과 정신셰계는 모든 게 그대로 인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도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삶,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이며 사랑일 수 있을까? 그렇게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여정에서 어느 부분에 큰 사랑이 숨어있는 건지. 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럽다는 걸 인지하게 한다.

죽음을 통해 다시한번 삶의 철학적 가치를 묻은 이 짧은 소설은 적은 분량안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요슈타인 가이더는 노르웨이 태어난 작가로 전작으로 [ 소피의 세계 ] 를 썼다. 이 책 [ 밤의 유서 ]는 철학 소설이자 인생을 반추하는 소설이며 반짝이는 호수가운데서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깊이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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