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화가 - 한국 문단과 화단, 그 뜨거운 이야기
윤범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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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사 중 근현대사 파트를 좋아한다. 근현대사는 뭐랄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그림자처럼 혹은 무의식처럼 살아서 영향을 준다. 어쩌면 어느 한 세월, 그 어디 한 귀퉁이에서 살았던 기억을 해마 깊이 간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한국사에 있어 격동기에 해당하는 시대, 그런 시대 가운뎃 길을 자신만의 색깔로 뚜벅뚜벅 걸어온 존재들이 있다. 독특한 영감으로 스스로를 가득 체운 체 .

[ 시인과 화가 ] 라고 불리우는 특별한 사람들, 그들은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처럼 독보적으로 빛난다. 그들의 아우라는 너무나도 눈부셔 나 같은 범인은 감히 다가가기조차 어렵다. 신조차 그들의 빛나는 재능에 질투가 나서 세상에 더 두지 못하고 일찌감치 떠매어 갔는가?. 유독 요절한 천재 시인과 화가들은 많은 이유를 나름 상상해 본다.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세상이 어수선한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기예를 감당하지 못하고 육체라는 껍질조차 버거워 훌훌 벗어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윤범모의 책 [ 시인과 화가 ]는 그렇게 근현대사라는 역동의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낸 시인과 화가들의 조합이 어우러진 열 일곱개의 에피소드를 챕터마다 소개하고 있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우리에게 익히 익숙한 인물들, 나혜석, 이상, 백석, 정지용, 윤동주, 박수근, 이중섭, 오영수가 있다면 그에 반해 잘 몰랐던 나혜석의 연인 최승구, 김복진, 김환기, 이원수와 김종영 그리고 민중화가 오윤과 김지하 까지 1930년 부터 1980년 한국을 주름잡았던 그들의 인생과 예술, 함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윤범모는 동국대 미술 사학 교수이며 현재는 국립 현대 미술관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시는 곧 그림이요. 그림은 곧 시이다. 중략 시화를 따로 떼어 놓고 어떻게 풍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의미의 선비는 시서화를 잘하는 삼절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시인과 화가 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시인가 화가들의 풍류에 대한 이야기이며, 풍류를 즐기며 한바탕 놀다가 소풍 끝내고 돌아간 이들의 이야기다. 물론 지금까지 생존하여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작품만 남겨두고 떠나간 분들이 더 많다. 하지만 생사를 떠나 서로 서로 연결된 이들은 죽었어도 산 사람의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아 회생하며 남겨진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엇이 먹고 싶어? "

이에 이상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한다

" 셈비끼야 의 멜론 "

변동림은 멜론을 사 와서 깎아 주었지만 이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시인과 화가 중에서


멜론을 깎아 접시에 담다가 이상을 떠올렸다. 이상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고 하니 흔한 멜론이 새롭게 보인다. 언제였던가 이상의 오감도를 읽으며 그의 정신세계가 무척 궁금했는 데 그도 삶과 죽음앞에 무기력한 한 사람이었나 보다.

이 책에서 다룬 시인과 화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는 40세에 요절한 판화가 오윤이다. 갯마을을 썼던 작가 오영수의 아들이며 80년대 민중미술가로 알려진 그의 작품은 작품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윤의 누나 오 숙희의 소개로 만난 김지하의 인연을 다룬 일화도 흥미롭다. 저자의 바램대로 울산에 있는 오 영수 문학관 옆에 오윤 미술관도 함께 추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 시인과 화가 ]는 저자가 실제로 몸 담고 있는 미술계의 인맥과 경험을 압축해서 쓴 책이라 그런지 에피소드들이 살아있다. 또한 먼저 떠나간 그들에 대한 회고와 그리움이 문장마다 문득 문득 엿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 책 [ 시인과 화가 ]는 자뭇 감동적이고 재미도 있어 독서하는 쾌감을 오랫만에 느꼈던 인문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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