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세상에 i를 담아서
사노 테츠야 지음, 박정원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9년 5월
평점 :
나는 책을 살 때 다른 사람의 평가를 신경 쓰며 구매하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 첫인상 단계에서. 다만 그걸로 확신이 서지 않는 애매한 작품을 만났을 때 그나마 시간을 가지고 평가를 들여다보는 편인데.
그런 경우 사용하는 건 한국 인터넷 서점이 아니라 보통
일본 아마존 쪽이다.
이건 아마 씹덕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일본 아마존 쪽 구매 평가는 웬만해서 한두 줄, 길어봤자 석 줄쯤 되는 한국 인터넷 서점들에 비해 조금 더 자세하다.
물론 한국 쪽도, 예를 들면 지금 본문이 그러하듯 기나긴 평가가 적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책을 구매하기 전 살펴보는 용도로 긴 글은 당연하게도 부담이 된다.
크게는 스포일러의 가능성이 증가함을 들 수 있겠고,
내용이 늘어질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 그래서 사? 말아? 에 대한 해답이 모호해지는 부분이 있다 ─ 까닭도 존재하며.
톡 까놓고 말해 길어서 읽기 귀찮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300장짜리 책을 구매하려 하면서 10장도 안 되는 리뷰 읽기를 귀찮아한다는 게 조금 웃기긴 한데.
내가 이 책의 존재를 안 것은 2018년도다.
그해 말 L노벨 책 부록으로 다음 연도 정식으로 발매할 책들의 일부 목록을 공개하며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첫인상에 따라 꼭 구매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쯤만 해도 리뷰를 찾아볼 이유는 없었거늘.
연초에 발매되겠다 싶은 기대가 ─ 소개해도 될 정도로 진행됐다 생각했기에 ─ 미뤄지다 5월에 이르러서야 책이 나오게 되고.
기다리던 도중 참지 못하고 평가를 찾아보게 됐다.
그다지 좋지 않더라.
제목과, loundraw 미려한 표지와, 전작인 데뷔작에서 괜찮은 ─ 뛰어나진 않았다 ─ 이야기를 보여줬기에 그 나름의 기대를 품고 있었건만.
이전에 몇몇 시도의 사례들에 의해 일마존 평을.
확실히 말해 절대적으로 신뢰할 정도가 된 나로서는 그 모호한 평가를 읽고 나서 구매 생각을 접고 제목만 기억한 채 마음 한편에만 두고 있었다.
뜬금없는데,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문예라는 장르가 상당히 잘 팔리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이 시장에 범람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는 그나마 평균적인 작품성이 보장되며,
거의 전부가 단편이기에 완결성 또한 높다. 쓰는 사람 대부분이 비교적 본인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는 이유도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읽는 이가 재미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들 하지만.
아무튼 요컨대 평균적으로 지뢰가 없는데, 잭팟이 터질 확률까지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 물꼬를 트고 노를 젓나 싶던 시장이 최근 들어서는 붐이 뚝 끊겨버리고 말았다.
항상 중얼거렸던 그 가뭄이다.
이유는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상 하위 호환이 명확한 장르이기에 굳이 아래의 ─ 높낮이를 따지자면 ─ 작품들을 구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래도, 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옆 나라에 비해 전체적인 시장 크기도 작기에 들여올 때 들이는 노력이나 금액에 비해 그다지 수익이 나지 않았으리라.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세세한 변화를 줌과 동시에 장르의 앞선에서 달리고 있어 확실히 판매량이 보장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제외하면 발매가 툭 끊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읽을 책이 떨어져 얼마 전,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자 접어뒀던 해당 작품을 구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책을 100쪽가량 읽었을 때, 나는 다시금 일마존 리뷰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구멍이 너무 숭숭 뚫려 있었다.
전작이 고급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자를 열었을 때 10개의 마카롱이 전부 들어있는 마카롱 상자였다고 하면.
이 작품은 상자를 열었더니 마카롱이 군데군데 빠져서 4개쯤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훔쳐 먹은 것도 아니고, 작가가 모르고 빼먹은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완성이 덜 된 작품이었다고 해야 하나.
끝까지 읽은 지금도 재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99에게는 졸작이어도 1에게는 인생 작품이 될만한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하고 살았는데.
사실 지금껏 내게 그 1에 해당하는 작품은 없었다.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내뱉기는 했으나, 체감하지는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99에게 졸작인 작품도 아니었고, 내가 그 1이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비율상으로는 5:1 정도고, 그냥 좀 잘 쓰지 못한 미완성 평 졸작이 수작쯤으로 느껴졌다는 정도라면 간신히 타협 가능한 수준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의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에 대해 누군가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니라고. 그저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이고,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작중 이야기를 이제야 처음 하면서 짧게 할 텐데.
작중에 나오는 학생 작가이자 시작 시점에 사망해있는 요시노가 소설을 쓰는 방법이란 꽤 특이하다.
평소에는 전혀 글을 쓰지 않다가, 일종의 계시 같은 무언가가 내려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마음껏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녀가 문장의 정밀도를 올리는 퇴고라는 작업을 할까.
분명 내가 예상하기로는 그런 거겠지.
작가인 시노 테츠야는 후기에서
원하는 대로 쓰게 해줘서 감사하다.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라고 말했다.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당연히 아니겠으나.
이 객관적으로, 아니 주관적으로 보더라도
무언가가 많이 결여된 작품을
나는 앞으로도 똑같이 생각하면서도 여러 번 읽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