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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ㅣ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예술작품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 심장이 빨리 뛰고, 몸에 힘이 풀리기도 하고, 심하면 기절까지 하는 증상이다.
어린 시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얼이 빠져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는데, 당시 겪었던 것이 이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였는데, 왜 그랬는지 며칠간 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집중도 못 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한 번 더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어떤 부분은 남들보다 예민한가 보다.) 그 시절 읽었던 책의 굵은 선으로 된 그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 이 책의 색연필로 그린 듯한 서정적인 삽화가 조금 어색하다.
제제는 이제 5살이다. 제제의 아버지는 실직 상태이고, 엄마는 영국 사람이 하는 방직공장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한다. 형제들도 모두 늘 굉장히 바쁘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저녁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빵과 포도주가 전부다.
5살 남자아이들은 그렇다. 장난도 치고 엉뚱한 짓도 하고 갖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다. 관심이 고픈 제제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말썽을 부린다. 그러나 삶이 힘든 가족들은 제재를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늘 날이 서 있는 가족들에게 제제는 화풀이하기 딱 좋은 대상이다.
제제는 그런 가족들도 모두 이해한다. 그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에게만은 천사 같은 아이다. 특히 동생 루이스에게 따뜻한 형이다. 자신이 못 받았던 사랑을 동생에게만은 주고 싶었을 거다.
어린 제제의 삶이 너무 험하다. 통곡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어쩜 그렇게까지 힘든 세상을 겪어야 했을까.
착하고 영리하고 예쁜 제제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23 문득 에드문드 아저씨가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의 작은 새가 내게 ㅇ뭔가를 일러주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저씨에 대해 하던 말들이었다. (...) 아저씨가 천천히 걷는 게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59 "너도 아주 예뻐. 오, 제제!" 누나는 무릎을 꿇어 내 머리를 품에 안아 주었다. "맙소사! 어떤 사람들에겐 산다는 게 왜 이리 힘든 걸까?"
71 "아이들은 자야 할 시간이야." 그러고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나는 그 순간 그 자리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어른이었다. 그것도 아주 슬픈 어른. 슬픔을 조각조각 맛 보아야 하는 어른들뿐이었다.
92 어른들을 이해하는 것은 때때로 정말 힘이 든다.
163 "제제 형! 제제 형!" 나는 천천히 말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며 뛰어내렸다. "무슨 일이야? 어떤 물소가 네 쪽으로 왔어?" "아니. 다른 거 하고 놀자. 인디언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 "이 인디언들은 아파치 족이야. 우리 친구란 말이야." "그래도 무서워. 너무 많아."
221 "엄마.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 선처럼 됐어야만 했어요."
281 "왜 그래, 슈르르까?" "슈르르까는 너야, 밍기뉴." "그럼 너는 꼬마 슈르르까야. 네가 주던 그 우정을 더 이상 바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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