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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신영복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봤다. 난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이름은 뭔가 익숙했다. 그리고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뭔지 몰라도 독재 시절 부당한 옥살이를 20년이나 하셨다길래 나도 읽어보고 싶었다.
책은 옥살이 동안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엮은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쓴 것이니, 그리고 모든 행동을 제약받는 환경인 감옥에서 쓴 글이니 본인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 아닐까.
가장 좋은 때라고 하는 젊은 시절에 무려 20년간을 부당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니 억울할 만도 하건만 그런 감정은 찾을 수가 없다.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저 가족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빈다. 그리고 감옥에서나마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신다.
편지글 내내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며 사는 것만이 진짜 아는 것'임을 강조하듯 주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깨달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진을 '감옥에 갇혀있는 것'으로 핑계 삼지 않는다. 이런 분에게는 긴 겨울 지나 봄이 오기 시작하는 감옥 창살에 녹아 흘러내리는 물조차도 생각의 대상이 된다.
책을 다 읽고 어떤 분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억울한 수감 생활을 견뎠느냐'라고 묻자 '나보다 더 한 상황에 있는 수감자들도 많았다'라고 대답하신다. 당시 광우병 소 수입으로 인한 촛불집회에 대해 묻자 '지금 당장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불씨가 되어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지금의 상황을 미리 보기라도 한듯하다.
결국 진리란 구하려고만 한다면 어디에나 있는 것을. 그곳이 감옥이든 천국이든 간에. 그래도 나라면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그렇게 의연하게 견디지는 못 할 것 같다.
중간중간 한자도 많이 나오고 약간 옛날 말투라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평소에 굉장히 속독하는 편인데 자꾸 쉬면서 음미하게 만드는 단정한 필체가 좋았다. 난생처음 천천히 읽는 법을 배운 것만 같다. 자극적이고 빵빵한 이야기가 지겹다면.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조용한 흐름을 발견하고 싶다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번쯤 읽어보시길.
59 이처럼 빗소리에 새삼스레 무거운 마음이 되는 까닭은 아직도 내게 숱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88 제가 맡은 일이란 하루 10여 족(足)의 갑피(甲皮)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별 뼛심이 드는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바른손 중지의 펜에 눌려 생긴 굳은살이 사라지고 이제는 구두칼을 쓰느라 엄지 끝에 제법 단단한 못자리가 잡혀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견 손가락 끝의 작은 변화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고 흐뭇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7 역마살은 떠돌이 광대 넋이 들린 거라고도 하고 길신(道神)이 씌운 거라고도 하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 찾아 나서는 방랑이란 풀이를 나는 좋아합니다. (...) 그 안거(安居)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도리어 방황의 인고 속에 상당한 분량의 꿈이 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53 그러나 가장 뜻깊은 사실은, 이처럼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는 동안 이제는 사랑도 미움도 시들해져버린 악대부원들의 관심 밖으로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걸어나와 ‘고양이의 길‘을 갔다는 사실입니다. (...) 이쪽의 미련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꽃순이‘라는 옛날의 이름으로 부르는 쪽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꽃순이의 실패‘도 ‘중동의 영자‘나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그가 겪었을 모진 시련과 편력을 알지 못하는 ‘남‘들로서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것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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