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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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춘향이와 이몽룡, 향단이와 방자가 나오는 <춘향전>. 예전에 <홍길동전>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만 생각해 보니 <춘향전>도 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싶어 중고서점 갔다가 냉큼 집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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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2편의 춘향전이 실려 있다. 하나는 배경이 숙종 시대, 다른 하나는 인조 시대로 되어있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약간씩 다르지만, 나머지 설정은 비슷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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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는 올해 십육 세 된 남원 기생의 딸이다. 기생의 딸이나 기적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기생이 아닌 평범한 규수다. 그냥 규수가 아니라 예쁘기로는 소문난 규수다. 게다가 당시 고전을 두루 익히고 응용까지 할 줄 아는 배운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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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룡은 남원 사또의 아들로, 춘향이와 동갑이다. 인물이 빼어나고 지혜롭고 문장력도 좋은 데다 글씨까지 잘 쓴단다. 둘 다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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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학문에 정진하고, 춘향도 춘향 나름대로 책도 보고 바느질도 익히고 당시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가 운명처럼 마주친다. 먼저 반한 건 역시 이몽룡이다. 단옷날 좋은 계절에 그네 타는 춘향이를 보고 한 마디로 "뿅 간" 그는 그날로 춘향이와 춘향이 모친에게 구애를 한다. 그러나 국법이 지엄하다. 장가도 안 간 양반의 자제가 첩부 터 들인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이몽룡은 진심이다. 둘은 그날부터 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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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어떤 연인에게도 위기는 있는 법. 몽룡의 아버지가 서울로 부임하게 되면서 급하게 떠나게 되고 몽룡은 과거 급제 후 춘향을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바삐 떠난다. 춘향이는 그날부터 수절하기로 한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변 사또라는 양반이 오자마자 열 일 제쳐두고 기생부터 불러들이더니, 다짜고짜 춘향이를 찾는다. 춘향이는 기생의 딸이지 기생이 아니며 전임 사또의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래서 지금 몽룡을 기다리며 수절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도 안하무인이다. 벅벅 우겨 춘향을 끌고 와 수청을 강요하나, 춘향은 완고하다. 그러자 세상에 그런 수절이 어디 있냐며 춘향이를 몸이 상하게 고문한다. 자기의 수청을 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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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하나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두 편의 춘향전을 읽으며 당대의 사람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게 뭔지는 알겠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신분제 사회에 대한 불만","여성의 정절 강조" 같은 것도 있었지만 "세상에 천한 여자도 이렇게 정절을 지키는데 남자라고 달라서야 될 쏘냐" 같은, 정치인으로서 두 임금을 섬기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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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보기 싫은 장면도 있었다. 두 번째 춘향전에서 춘향이 옥 중에 있을 때 지나가는 장님 점술사에게 점을 치기 위해 불러들이자 춘향을 더듬는 장면은, 그때 시각으로 봐서는 우스운 장치였을지 모르나 2019년을 사는 내 시각에서 보자면 명백한 성추행이며 지금 같았으면 '#미투' 같은 걸 달고 각종 SNS를 통해 확산 재확산 됐을 만한 추태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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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이몽룡은 다행히 서울에서 장원 급제를 하고, 남원으로 암행을 오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춘향의 소문을 듣고 현 남원 사또를 급습하기 전 날 춘향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만나보기도 한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몽룡은 당연히 변 사또 급습에 성공하고, 수절을 지킨 춘향은 임금님께 '정렬부인' 칭호를 하사받고 몽룡도 승진하여 둘은 부부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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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읽은 춘향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 다 하는 굳건한 심지를 가진 여성의 이야기'로 보인다. 사랑하는 남자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청만 들면 어쩌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 게다가 변 사또는 자기를 고문까지 하고 있다. 옥중에 큰 칼 차고 갇혀 어찌 될지 모르는 답답한 상황에서도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을지 모른다'라며 꿋꿋하고, 매를 맞아 살이 터지고 선혈이 낭자한 데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상하게, 그리고 기개있게 다 하는 춘향이의 모습이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절개 있게 보였다. 오 요고 봐라? 이 언니 할 말 다 하네. 그래 봐야 열여섯 살짜리가. 그 정도는 되어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임금님께 "정렬부인" 칭호도 받고 양반가의 남자의 정부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나 보다. 재미는 있다. 해석 또한 읽는 사람 마음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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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표지가 참 마음에 안 든다. 아무리 춘향전의 <사랑가>가 이야기의 절정이라고는 하나 그림이 뭐 이래? 그림의 구도 봐라. 몽룡이 뒤에서 옷을 벗기는 춘향의 옷 고름이 풀어진 모습에 눈이 가게 그려 놨다. 여성의 대상화는 이런 데서도 보인다. 어쩌자는 건지.

 

 

요즘 소설과는 다르게 구어체인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보이는 것이 다 춘향이라. 보고지고. 칠 년 큰 가뭄에 빗발같이 보고지고. 구 년 홍수에 햇빛 같이 보고지고. 달 없는 동쪽 하늘에 불 켠 듯이 보고지고. - P197

백옥 같은 다리에 솟아나는 것은 유혈이라. 보는 이 뉘 아니 가련히 여기리오? - P218

219
철석 같이 수절하는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엄히 다스려 옥에 가두었지만 구관의 아들인지 개아들인지 한 번 떠난 후 내내 소식이 없으니 그런 소자식이 어디 있을까 보오? - P230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호의호식하며 살고, 어떤 사람은 사주가 험악하여 일신이 난처한가? 빈부고락 들어보세." - P248

비록 장부라도 임금 섬기는 자는 반드시 두 마음 먹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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