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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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를 얼마만에 읽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을 읽고 멈췄으니 15년 정도 됐으려나. 오래되었지만 주인공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글이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인생에 대한 시크함이 글 속에서 품어져나오는 듯 해서 이게 프랑스 소설의 느낌인가 갸웃거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난 아멜리 노통브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글 속에 시크함은 남아있지만 초창기 작품보다는 모가 둥글어진 느낌이었다. 편하게 읽혔고 무엇보다 뒷부분의 반전이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130쪽 내외의 아주 짧은 글임이 아쉬웠다.

  매력적인 인물 둘이 등장한다. 느빌백작과 그의 딸 세리외즈.

  느빌백작은 벨기에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귀족이다. 귀족사회를 지켜온 구습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난하지만 남들에게는 화려한 파티를 열어보임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긴다. ....어느날 갑자기 점쟁이로부터 듣은 예언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듣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각인되어 불안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여는 파티에서 초대받은 손님 중 한 명을 죽이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

  느빌백작의 매력은 바로 귀족이라는 지위를 놓지 못하면서도 어이없는 예언을 받아들이는 그 모습에서 품어져나온다. 허무주의에 빠져있음에도 귀족사회에 대한 낭만을 버리지 못하는 귀여움이 있다. 예언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 그 어이없는 행동마저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딸에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갈피를 못 잡고 고민하는 모습도 그랬다. 아멜리 노통브의 장기가 아닌가 싶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는 점...뻔히 그 남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할 수 있지만 노통브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로 받아들여진다.  

  대부분의 책과 서점에서 노통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여주인공의 주체적이고도 명쾌한 행동들을 보여주는 인물이 느빌백작의 딸인 세리외즈다. 이 아이는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깊은 인상을 준다. 흔들리는 아빠의 마음을 다잡고 그 죽음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바꾸어 가고............. 그리고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까지 세리외즈는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인지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이끌어내는 능력 또한 출중하다. 그리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지는 마지막 반전...시원시원...정말 매력이 넘친다.

  내가 노통브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가 그리는 여성 의멋짐폭발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이 책도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다. 다른 소설 속 민폐여성과는 차원이 다른 시원시원함이 있다. 무엇보다 오랜기간 느빌백작이 귀족이라는  틀에 얽매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우와좌왕하며 혼돈의 시기를 보낸 것에 비해 세리외즈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또렷이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취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챙취하는데 거침이 없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마멤논의 이야기와 오스카와일드의 <아서 새빌경의 범죄>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끌어내어 급작스럽게 진행된 인물의 생각전환도 독자들은 그럴 듯 하다고 받아들이는 효과를 누린다. 나 스스로가 패러디의 반짝이는 이야기 전환을 즐기는 독자라서 그럴지도....

  무튼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간만에 만난 여전한 노통브의 시크함도 좋았고 전보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도 좋았다. - 어쩌면 역자의 능력일지도 모르겠지만 - 짧은 분량 속에서도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끌어내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그의 서술 또한 마음에 들어 별 다섯개를 주고도 뿌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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