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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계굴의 전설
김정희 지음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0년 6월
평점 :
비극적인 한국전쟁 6.25는 1950년 6월25일 ~1953년 7월27일 동안 일어났다.
전쟁으로 전사하거나 실종된 이들과 이재민이 1,000만 명에 달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당시 전쟁의 참상이 상당히 끔찍했기에 분명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6.25 전쟁 이면의 사건들이 있으리라 짐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 학살 사건 중 '곡계굴 사건'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비교적 '영동 노근리 사건'은 잘 알려져 있는 반면, 비슷한 일이 발생했던 '단양 곡계굴 사건'은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었다.
단양 곡계굴 사건은 충북 단양군 느티마을에서 일어났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20일, 한 겨울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고립될 것을 걱정한 마을 주민들이 피난을 떠나려했으나 길이 차단되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가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몸을 숨기려 마을 인근의 곡계굴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미군 전투기 여러대는 곡계굴과 마을과 산에 소이탄을 집중적으로 투하했다. 소이탄은 드럼통에 석유를 넣어서 불을 붙이면 그 일대가 불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전멸시키는 폭탄이었다. 곡계굴에 있던 주민들은 유독가스로 질식하고 , 동굴에서 뛰어나온 주민들은 불에 타죽거나 기관총으로 사살되었다.
미군 측에선, 1.4후퇴로 미군과 한국군이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북한군들이 빈집에 숨어들거나 피난민 속에 섞여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저지른 군사작전이었다. 하지만, 당시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보통의 마을 주민들이었다.
희생자만 300명을 넘어섰고 소와 같은 가축, 재산을 지키기위해 집에 머물렀던 가족들이 잠잠해진 틈에야 시신을 수습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동안 쉬쉬되다가 50년이 지나서야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위령비가 세워져있지만 현재까지 제대로된 위령시설 안장도 보상도 없다.
6.25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생존자들의 연세가 벌써 70대 후반~80대 후반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전쟁을 증언해줄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비극적인 사건들은 점점 더 역사속으로 잊혀질 것이라 생각하면 서글프기도 하다. 벌써 올해로 6.25 전쟁 7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전쟁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잃고 살아남은 이들은 죄책감과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마침, 작년부터는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무공훈장 대상자들을 찾는 조사단이 2022년까지 한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글에 '무공훈장 조사단' 이라고 검색하여 사이트에 접속하면 대상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제는 대부분 유족들이 찾아야 할 것이다.
엑셀 파일을 다운받아보면 5만명이 넘는 대상자들이 있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하루 빨리 전쟁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명예가 주어지길 바란다. 앞으로는 전쟁같은 비극적인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다 같이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