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월드
커비 로자네스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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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그대로 환상적이다. 종이 위를 가득 채운 정교한 그림들이 커비 로자네스가 창조한 세계로 단번에 이끈다.
 그의 그림은 배경이 바다가 되건 밤하늘이 되건 땅 위가 되건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동물과 식물 등의 자연적 요소와 기계적 요소의 결합,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한 듯한 과감한 구조, 그리고 동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세밀한 묘사로 작은 부분도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으로 가득하다. 또한 기괴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동화 같은 작품까지, 그의 섬세한 묘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동물, 사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거기에 빽빽하게 채워진 동물, 사물, 풍경 속에서 그가 숨겨놓은 그림을 찾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검은 펜 하나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커비 로자네스. 낙서하듯 그린 펜화를 보며 그의 집요한 묘사와 인내가 놀라우면서도 부러웠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컬러링하며 예전에 가끔씩 끼적이던 패턴을 쌓아올린 내 낙서들도 떠올랐다. 각기 다른 수많은 오브제로 채워진 그의 작품과 달리, 의미 없는 패턴들을 쌓아올린 내 낙서들이 그의 작품과 같다고 할 순 없지만 검은 펜 하나로 하얀 종이 한 장을 채워나가는 그 시간들이 주던 순수한 기쁨은 같을 것이다. 상상력 가득한 이미지. 현실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 그가 검은 펜 하나로 창조한 환상적인 세계를 여러 색으로 채워나가는 시간들 역시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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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존경하는 지식인, 작가 유시민의 청춘을 함께한 책들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사람이 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그를 사로잡고 사유하고 행동하게 만든 책을 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읽은 그 책을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했는지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미약하게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이자,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가 유시민만의 작품 해석과 그의 생각을 보며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단 한 문장, ‘아는 만큼 보인다’. 같은 책을 두고 유시민 작가와 내가 받아들인 이해의 깊이가 말할 수 없이 차이나고 때로는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섭렵한 그의 해석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춘의 독서»를 읽는 모든 시간들은 그의 지식에 매료된 황홀한 시간이었다.

 먼저, 그의 청춘의 독서 목록에서 내가 읽은 책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단 두 권뿐이다. 
 하지만 「죄와 벌」에서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아무리 선한 목적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는 답을 내놓으면서 쉽게 지나쳤던 인물 ‘두냐’에 조명을 비출 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진보 성향의 지식인 뵐과 극우 황색신문 <빌트>가 벌인 전쟁의 산물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역사적 사건을 제시할 때, 두 권의 책은 새롭게 다가왔다.

 지식인 유시민을 만든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유시민 작가는 리영희 선생처럼 살고 싶었다며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말한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농촌법학회’라는 학회에서 이 책을 읽으며 실천하는 지식인의 꿈을 품은 청년 유시민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는 ‘사상의 은사’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가치관과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이 진정한 지식인의 면모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 두려움 없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거기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류를 담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는 유시민, 「맹자」에서 진정한 보수주의의 모습을 보거나, 최인훈의 「광장」을 보며 다시 눈동자를 붉히는 그의 모습에서 정치인 유시민과 인간 유시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게재된 1962년 11월 소련 문학잡지 <노브이 미르(Novyi Mir)>에서 읽은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 한 구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를 27살 때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줄에 남긴 그의 모습에선 나를 할 말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그가 살면서 읽은 가장 소중한 책으로 꼽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들을 청춘의 독서로 고른 유시민에게서 사회과학도로서, 경제학자로서, 그리고 정치인, 작가, 인간으로서 그의 지적 호기심이 어디에서 충족되었고, 그의 지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소중한 책으로 꼽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암울한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유시민과 그와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행동하게끔 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진보가 생물학적 진화와 달리 획득한 것의 전승에 의해 일어난다는 카의 견해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직접 닦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었고 그 믿음이 변화를 위한 용기 있는 외침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내게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책이다. 비단 이 책뿐이겠는가.

 그의 표현대로 작가 유시민의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지도와 같은 의미의 책들…. 
 좋은 책의 작가에겐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작가 유시민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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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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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이 내가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 아홉 명을 학대-살해한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열다섯 살 소녀 애니. ‘애니’는 엄마를 직접 경찰에 신고하고 ‘밀리’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심리학자 마이크의 가정에 임시로 머물게 된다.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니’가 아닌 ‘밀리’가 되기 위한 그녀만의 선택과 행동은 끝없이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와 자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선악의 경계선에 놓인다. 

 사이코패스의 뇌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확률을 생각해보았다. 80퍼센트가 유전이고 2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다.
 그러니 나는,
 100퍼센트다.

 엄마에 의해 통제된 삶을 살아온 애니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자아로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이크와 그의 아내 사스키아에게 사랑받기 위한 행동을 보이면서도 그들의 딸 피비가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가족의 균열을 이용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나가는 밀리. 하지만 피비는 밀리에게 집중되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사랑과 관심에 대한 대가로 학교에서 밀리를 괴롭힌다. 
 10대 소녀들의 질투와 욕망, 비뚤어진 자아가 만들어내는 교묘하고 잔인한 행동. 애니의 양극단의 놓인 감정적 갈등. 애니는 피비와 친구들의 괴롭힘에 무력하게 당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이루고, 엄마의 목소리를 따르는 동시에 거부하는 아이러니 속에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또한 자신을 경멸하는 피비에게 복수를 꿈꾸면서도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거나, 그녀의 유일한 친구 모건을 향해 감추고 싶은 본능인 폭력적 성향을 드러냈다가 이내 후회하는 등 혼란스러운 자신의 내면의 소용돌이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 난 항상 엄마에게 애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밀리야. 내 안의 샴쌍둥이가 전쟁을 벌였다.
 착한 나.
 나쁜 나.

 엄마가 부르는 끔찍한 놀이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애니는 이제 엄마를 심판하기 위해 법정에 서고, 피해자들의 고통, 연민을 느끼면서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느낀다. 법정에서의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가 정착하고 싶은 집에서의 생활과 끝없는 적에 둘러싸인 학교에서의 생활을 해내야 하는 애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하지만, 애니가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피비가 알게 된다. 
 마이크 아저씨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에 가야 될 상황에 처한 애니. 애니는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유산을 활용한다. 

 제목의 ‘굿 미 배드 미’는 ‘애니’와 애니의 새로운 페르소나 ‘밀리’의 끝없는 전쟁이자, 엄마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의 충돌, 매순간 그녀가 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인격을 꺼내야 하는 순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서 그녀가 자신의 어떤 목소리를 들었는지, 피비가 죽고 피비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한 애니가 자신을 돌봐준 마이크 아저씨의 욕망을 어떠한 방식으로 건드렸는지, 엄마를 벗어나 새로운 가정에 정착한 듯한 애니가 절대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애니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드러나는 각기 다른 욕망과 ‘굿 미 배드 미’. 피비는 결핍된 사랑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충족하려 하거나, 사스키아는 순탄치 못한 딸 피비와의 관계에서 오는 공허를 약물과 다른 남자와의 관계로 채운다. 언제나 침착하고 훌륭한 인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마이크 역시 애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피비를 잃은 아버지로서의 꿈틀대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애니는 그의 흔들리는 욕망을 파고들어, 자신이 아직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의 비싼 셔츠 아래 숨겨진 영웅 심리, 자부심을 이용해 피비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의 영원한 착한 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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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레이디스 - 혼자인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 노지양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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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 보면,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결말이 결혼으로 끝날 때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행복한 결말은 왜 항상 결혼으로 귀결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성, 특히 과거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이 그들을 어떤 식으로 옭아맸는지, 더 이상 결혼 전 들었던 자신의 이름은 들을 수 없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자신만 남았을 때의 기분이 어떤 건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지 않다고 내놓고 외치거나 때론 그렇지 않지만 누구나 묵인한 그 사실을 본인 스스로도 인정할 때의 모욕감이 얼마 만큼인지 깊이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고, 실제로도 많이 바뀌었지만 할아버지와 그 뒤를 따라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월한 남성과 열등한 여성. 오직 남성에 의해 정의되는 여성.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듯, 미국에―여성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신분이 그 여자가 결혼한 남성의 사회적 신분으로 ‘덮인다’는 뜻의―‘커버처 coverture’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몰랐던 과거의 여성들이 오직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인내했던 그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아직도 그 차별의 구름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와 슬픔을 같이 느낀다.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들이 받는 차별은 여전히 이 사회의 눈부신 진보를 의심케 한다. ‘정말 사람들은 이 말과 행동이 차별인 줄 모르는 걸까?’라는 생각은 인터넷의 남겨진 댓글만 봐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여성’이라는 차별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비혼과 만혼, 결혼 등을 주제로 삼아 차별의 역사와 인식의 변화,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사회적, 문화적 공격 들을 다룬다. 또한 동시에 역시 차별의 대상이 되는 성소수자, 유색인종―흑인 여성들은 남녀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는다는 사실도 함께―등을 언급한다. 
 백인의 법적인 노예였던 흑인이, 남성들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버렸던 여성이,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성소수자 들이 이제는 당당히 사회에 진출하고 성공하고 자신의 공간을 갖고 돈을 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여전히 차별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을 포함한 차별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은, 책에서 주목한 ‘여성’과 ‘결혼’이라는 주제와 조금 벗어난 것 같지만 이 책이 무엇보다 ‘차별’을 다룬다는 점에선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성애자들이 결혼에서 탈출하려는 세태와 성소수자들이 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모습으로만 존속했던 제도를 해체하려 하기 때문에 같은 프로젝트인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결혼’과 ‘차별’을 동시에 아우른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자신이 게이임을 당당히 밝힌 연예인이 방송과 성공한 사업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황인종인 우리나라 가수가 백인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흑인 방송인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정당 3곳 당대표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은 눈부신 발전이다. 하지만 과거로 회귀를 주장하는 차별성 발언들은 여전하다. 

 때로는 과격한 말로,―예컨대, “제도로서의 결혼은 관행으로서의 강간이 발전한 것이다.”라는 말이 남성 중심적 결혼을 비판하는 의미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좀 과한 건 사실 아닐까?―때로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또 때로는 인터뷰한 여성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듯 자세히 설명하는 이 책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뉴욕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섹스를 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함께 외로움과 돈, 결혼과 아이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이 페미니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급진적인 사고와 강력한 페미니즘을 내포하고 있어 페미니즘이 남성혐오가 아니고, 그래서 또한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깊은 혐오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차별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을 스스로 하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이 시대의 수많은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여성과 남성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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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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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정복이야. 사랑은 전쟁이라고.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백설공주’를 모티프로 한 소설 «레바나»는 지구 정복을 꿈꾸는 달의 여왕 레바나의 이야기이다. 
흉측한 본모습을 마법으로 감추며 살아가는 레바나와 허영심과 잔혹함이 가득한 언니 채너리, 레바나의 지독한 사랑을 받는 근위병 에브렛, 그리고 그의 아내 솔스티스와 솔스티스가 죽으며 남긴 단 하나의 선물인 그의 딸 윈터.
 에브렛에 대한 처절한 갈망과 여왕의 자리에 대한 욕망을 동시에 품으며 소녀의 모습에서 사악한 마녀의 모습까지 드러내는 레바나. 그녀는 거짓된 삶과 사랑, 욕망과 환상, 질투, 비뚤어진 선택으로 점점 비극적 결말로 다가간다. 

 “모르겠나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원래 그런 거예요.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모순되는 감정과 휘몰아치는 격정. …”

 에브렛을 자신의 남편으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에게서 진실한 사랑의 감정은 결코 느끼지 못하는 레바나는 언니의 죽음으로 여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 단, 그녀의 조카 셀린이 성장할 때까지만. 그녀의 욕망은 점점 커져가고 그녀는 조카를 잔인하게 죽이기에 이른다. 여왕으로서의 레바나와 아내로서의 레바나의 간극은 커져가고, 그녀는 자신의 백성들과 루나, 지구를 위한 선택을 내린다. 
 에브렛을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욕망과 갈망, 자신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는다거나 그의 아내 솔스티스와 딸 윈터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죽은 언니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인 셀린을 잔혹하게 죽이는 모습과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녀가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가 믿지 못한 것이 에브렛이 아닌 자기 자신은 아니었는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랑의 결말이 어떠한지 등 더 이상 두려움에 떠는 소녀의 모습이 아닌 그리스의 비극 ‘메데이아’를 떠올리게 하는 마녀와 괴물의 모습만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레바나는 그렇게 섬뜩한 짓을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실은 많이 슬펐다. 하지만 성공은 성공이었다. 승리는 승리인 것이다.

 그녀의 잔혹함과 욕망, 그리고 계속해서 악랄해지는 레바나의 모습 이면에 자리한 슬픔과 외로움,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쓸쓸함 이 모든 것은 결말의 여운을 남긴다. 

 사랑은 정복이야. 사랑은 전쟁이라고.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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