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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존경하는 지식인, 작가 유시민의 청춘을 함께한 책들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사람이 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그를 사로잡고 사유하고 행동하게 만든 책을 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읽은 그 책을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했는지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미약하게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이자,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가 유시민만의 작품 해석과 그의 생각을 보며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단 한 문장, ‘아는 만큼 보인다’. 같은 책을 두고 유시민 작가와 내가 받아들인 이해의 깊이가 말할 수 없이 차이나고 때로는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섭렵한 그의 해석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춘의 독서»를 읽는 모든 시간들은 그의 지식에 매료된 황홀한 시간이었다.
먼저, 그의 청춘의 독서 목록에서 내가 읽은 책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단 두 권뿐이다.
하지만 「죄와 벌」에서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아무리 선한 목적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는 답을 내놓으면서 쉽게 지나쳤던 인물 ‘두냐’에 조명을 비출 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진보 성향의 지식인 뵐과 극우 황색신문 <빌트>가 벌인 전쟁의 산물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역사적 사건을 제시할 때, 두 권의 책은 새롭게 다가왔다.
지식인 유시민을 만든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유시민 작가는 리영희 선생처럼 살고 싶었다며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말한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농촌법학회’라는 학회에서 이 책을 읽으며 실천하는 지식인의 꿈을 품은 청년 유시민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는 ‘사상의 은사’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가치관과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이 진정한 지식인의 면모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 두려움 없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거기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류를 담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는 유시민, 「맹자」에서 진정한 보수주의의 모습을 보거나, 최인훈의 「광장」을 보며 다시 눈동자를 붉히는 그의 모습에서 정치인 유시민과 인간 유시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게재된 1962년 11월 소련 문학잡지 <노브이 미르(Novyi Mir)>에서 읽은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 한 구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를 27살 때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줄에 남긴 그의 모습에선 나를 할 말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그가 살면서 읽은 가장 소중한 책으로 꼽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들을 청춘의 독서로 고른 유시민에게서 사회과학도로서, 경제학자로서, 그리고 정치인, 작가, 인간으로서 그의 지적 호기심이 어디에서 충족되었고, 그의 지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소중한 책으로 꼽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암울한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유시민과 그와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행동하게끔 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진보가 생물학적 진화와 달리 획득한 것의 전승에 의해 일어난다는 카의 견해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직접 닦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었고 그 믿음이 변화를 위한 용기 있는 외침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내게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책이다. 비단 이 책뿐이겠는가.
그의 표현대로 작가 유시민의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지도와 같은 의미의 책들….
좋은 책의 작가에겐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작가 유시민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