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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코끼리 끌어안기
네이선 파일러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달빛 코끼리 끌어안기>

소설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는 지금도 매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모든 글자 하나하나가 영화 속 매슈의 내레이션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매슈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성장한 것 같은 느낌 속에 리뷰를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

소설의 이야기는 가족의 상실과 죄책감, 그리고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소년의 성장을 담고 있다. 주인공 매슈는 가족여행 중 사고로 형 사이먼을 잃게 된다. 매슈는 사이먼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여 죄책감을 갖게 되고 결국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조현병을 앓게 된다. 장애를 앓고 있는 사이먼이 부모님이 죽으면 자기를 누가 돌봐주냐고 걱정하자 자신이 형의 슈퍼히어로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던 매슈. 형, 사이먼이 자신의 슈퍼히어로였던 매슈. 매슈는 이제 사이먼을 어디에서든, 무엇에서든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가족의 새로운 초상이었다. 나란히 앉아 사이먼 형이 있던 자리를 응시하는 세 사람의 모습
작가는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슬프고도 현실적으로 그려낼 뿐만 아니라, 소년 매슈가 어른이 되는 과정과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다양한 이미지와 글의 형식, 다른 글자체를 사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은 소설의 내용을 전혀 방해하지 않으면서 매슈의 목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리도록 했다. 무척이나 놀라웠다.




나의 치료 계획은 다음과 같으니까. 나는 어릴 때 나의 형을 죽였고 이제 또 한 번 그를 죽여야 한다. 나는 그를 독살시키기 위한 약을 투여 받고 그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받는다.
책의 모든 부분 중 매슈의 목소리가 가장 생생하게 들렸던 <조현병> <작별인사> <보물> 에서 매슈가 겪어야 했던 고통들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함께 아파해야 했다.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독자에게 엄청난 행복이자 고통이기도 하다. 매슈의 이야기는 너무도 슬펐고, 너무도 아름다웠다.
과거에 대해 쓰는 것은 과거를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방법, 과거를 다시 한 번 펼쳐볼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종이 위에 기억을 펼쳐놓는 것은 그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애초에 간직하기 위한 보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놓는 방법을 찾는 수단이었다.
매슈는 사이먼의 추모식을 직접 준비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훌륭한 추모식을. 추모식을 위해 모인 사람들에 비해 너무 넓기만 한 장소는 사이먼과의 추억들로 가득 찬다.
그리고 매슈는 그 추모식에서 주로 듣고만 있었다. 웃음과 울음,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고요한 정적을.
매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면서 완전히 그가 느껴야 했던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매슈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서 기뻤고, 작가가 표현해 낸 인물에 이렇게나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또 다시 기뻤다. 그런 점에선 <자기 앞의 生>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매슈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 책을 덮고 과연 매슈를 사랑하지 않거나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책장에 있는 책들 중 아직 안 읽은 책들도 있고, 사고 싶은 책 순위에 이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이 책을 읽지 못 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출판사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 꼭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책의 제목을 놓고 투표했을 때 ‘달이 없는 세상’에 투표를 했었는데, 책을 읽고 난 뒤 ‘달빛 코끼리 끌어안기’라는 제목이 훨씬 좋았다는 말도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좋은 시간을 선물해 준 출판사 분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