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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평점 :

이 책의 표지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란 파도의 이미지, 그리고 그 끝자락에 이어지는 빨간 심전도 이미지는 죽음과 삶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동시에 서로 단절되지 않은 그 흐름엔 한 명의 죽음과 한 명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비극과 희극이, 끝과 시작이, 알 수 없는 세계의 우연성과 운명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죽음과 장기이식. 놀랍도록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상황과 인물의 감정, 대화의 확실한 경계가 없고, 단 하루 동안의 시간 안에 벌어진다는 설정이지만 각 인물들의 각기 다른 감정과 상황,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 긴박함과 생생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마치 모든 문장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다.
그 날, 새벽의 교통사고는 열아홉 살밖에 안 된 시몽 랭브르에게 그 밤의 서핑이 마지막이었음을 선고한다. 파랗게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역동성과 젊은 청년의 빛나는 생명력이 한 순간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코마 상태로 대치되는 이 비극은 그의 가족 마리안, 숀, 루에게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의미하며 하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끔찍한 과정에 놓이게 한다.
아직 아들의 사고 소식을 모르는 남편 숀의 목소리를 듣는 마리안이 지금 그대로의 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기회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를 비극적 사건의 현재 속에 끌고 오는 순간과 그들이 직접 만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련의 순간들은 한 편의 소설이자 극작품, 영화의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또한, 그런 그들에게 장기 기증의 선택을 묻고 답을 받아내는 토마의 상황, 삶과 죽음의 연속성이 뚜렷한 병원에서 생활하는 피에르 레볼, 코르델리아 오울 등의 각기 다른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상과 비극의 거대한 간극과 밀접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아이러니다.
‘심장’이 의미하는 삶. 전체를 대신하는 부분.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언제, 어떻게 뜨거워졌고 그의 여자친구 쥘리에트로 인해 어떻게 녹아내렸는지, 심장이, 시몽 랭브르가 불러일으킨 기억. 죽은 그의 살아 있는 심장은 이제 또 하나의 생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기 적출과 이식,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 죽음과 삶의 동시성을 보여주는 장기 적출의 과정에서 마리안과 숀의 부탁으로 시몽 랭브르의 귀에 약속했던 읊조림, 기도문을 속삭여주며 그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 파도 소리를 들려주는 순간은 온전한 시몽 랭브르의 모습으로, 살아생전 그가 했던 수많은 순간들과 앞으로 그가 했을 수많은 순간들을 하게 만든다.
… 그것들은 다른 육신들을 향해 질주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그녀의 아들의 단일성에서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의 특별한 기억과 이렇게 분산된 육체를 어떻게 결부시켜야 할까? 그의 존재, 이 세상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 그의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부글거리는 기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시몽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말끔하고 온전하다. 그것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 아이다.
‘죽음을 전장에 나와 죽음을 맞는 그리스 영웅과 그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존했던 장례의식’에 비유되는 장기 적출-복원-이식의 과정은 숨 막히는 수술과정을 보여주며 멈추지 않는 심장 박동의 울림을 들려준다. 죽음의 순간,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식을 결정짓는 순간, 그것이 누군가의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그 모든 순간에.
그 박동은 태아의 심장 박동을, 처음 초음파를 찍을 때 볼 수 있는 그 툭툭 튀는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지금 들리는 소리는 최초의 박동, 첫 번째 박동, 여명을 알리는 박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