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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평점 :

지금 돌아보면 후회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지는 돌아보았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세상은 서서히 바래가는 듯하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일어나길 바라던 조지 앞에 나타난 리아나 덱터. 그녀의 등장은 그가 영원히 잊지 못할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앞으로 조지가 겪을 일이 철저히 그녀의 말과 행동에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선택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리아나의 모든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지만 그래도 믿고 싶어 하는 조지의 사랑.
리아나의 부탁이 무엇인지 듣기 전부터 자신이 승낙하리라는 걸 아는 조지의 사랑.
갑자기 그의 앞에 우연히 나타난 그녀의 부탁은 자신이 과거 연인에게서 훔친 돈을 대신 돌려달라는 것. 조지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일로 인해 폭력과 살인 사건에 관여되는 건 물론 살인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어떻게 해야 잠긴 금고를 열 수 있을까? 금고 주인에게 금고에 넣을 만한 무언가를 주면 된다. 조지는 그 상황에서 완벽한 배우였다.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조지는 리아나 덱터와 함께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형편없는 선택을 한다. 대학생 시절 그녀와 연인이었던 조지는 그녀가 많은 비밀과 위험을 곁에 두고 있었던 사실도 알고,―‘오드리’라는 인물을 대신해 학교에 다녔던 리아나는 오드리의 죽음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 죽음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그녀에게는 심장처럼 재깍거리는 시계가 있어 언제든 종료 알람이 울릴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 그랬듯,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자신의 삶이 일상에서 백만 킬로미터와 백만 년쯤 멀어진 것과 같은 기분에 휩싸인 현재에도 그녀에 대한 사랑―연민 혹은 집착―으로 희망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영화 속 룰루처럼 새로운 나를 만들어냈다면 그게 원래 모습보다 더 솔직하고… 진정한 내가 아닐까? …”
“ … 겉보기에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가능해 보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우린 누구나 과거의 산물이야.”
리아나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녀는 자기가 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계속해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 결과, 조지는 리아나와 시체들과 함께 바다에 던져져 죽임을 당할 무기력한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리아나에 관한 세세한 사실들로 가득 찬 조지의 기억은 캠퍼스 북쪽 끝에 위치한 공사 현장에서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영원히 오드리 벡으로 살기 위해 허락을 구했던 유일한 순간의 대화를.
도니 젠크스라는 위험한 인물, 리아나의 부탁으로 돈을 돌려주었던 제럴드 매클레인의 살인사건, 또 다른 인물의 살인과 다이아몬드 절도사건 등 조지의 삶은 단조로웠던 일상을 그토록 싫어했던 것을 후회하는 한편, 진실에 다가가는 느낌으로 그녀와 상황을 또렷이 보기 시작한다. 바다에 던져진 시체들과 리아나. 그리고 변신이라는 그녀의 재능과 장기, 능력을 모두 인정하며 그는 확신한다. 그녀는 살아 있다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낌없이 뺏는 사랑» 역시 피터 스완슨이 창조한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두 소설 모두, 여성 캐릭터에 비해 비교적 순진한 남성 캐릭터는 성적인 매력과 사이코패스 기질을 동시에 갖춘 그녀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 그녀를 찾아가는 조지에게서, 절벽을 따라 펼쳐진 잿빛 폐허와 멀리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대서양 밑바닥에 리아나가 잠들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확신하는 조지에게서만큼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릴리와 «아낌없이 뺏는 사랑»의 리아나보다 더 소름끼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리아나는 자신에 대한 조지의―변하지 않을―사랑을 이용해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갔고, 조지는 그 모든 걸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에 다시 다가간다. 끔찍하고 멍청한 사랑, 집착…. 혹은 그녀보다 더한 사이코패스인 조지는 리아나의 완벽한 파트너다.
변신이 그녀의 재능이라면 조지는 그녀가 왜 자신에게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조지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늘 똑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