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데이
조너선 스톤 지음, 김무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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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노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분노다.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 텅 빈 집.

 오직 생존을 위한 삶의 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온 스탠리에게 닥친 비극. 
 그 비극을 홀로 해결해나가기로 한 것은 그의 본능과도 같은 유일한 선택이었다. 이삿짐센터를 가장해 강도사기를 벌이는 닉에게 40년 세월의 모든 기록을 한순간 잃은 그는 자신의 집이었다기보다 그의 아내 로즈의 집이었던 공간의 상실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70대의 노인인 스탠리는 보험회사를 통해 잃어버린 물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고 이사를 결심하며 품었던 그들의 원래 계획, 단순한 삶에 다가갔음을 받아들여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성적이지만 그의 존재를 전부 부정하는 선택 대신, 닉을 직접 추적해 그의 물건들―삶의 승리와 패배, 가족의 자취를 고스란히 남긴 그 기록들은 그가 과거로부터 살아남아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규정한다―을 되찾아오기로 결심한다.

 나의 인생이었지만 더 이상 나의 인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

 스탠리와 로즈, 노부부는 벤츠에 올라타 필요한 말 몇 마디와 침묵만으로 위험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 과정은 미국의 태양과 농가, 웅장한 하늘 아래에서 그들의 결혼생활을 드러내며 스탠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해주고, 누군가의 소유물이 누군가의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를 나타내는지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여정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스탠리가 과거 어린 소년이었던 자신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스탠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스탠리는 여전히 그 시절의 소년이다.

 그의 옆을 지나는 곤충을 계속 지켜보다가 충동적으로 그 곤충을 입에 넣어 씹는 장면은 그가 살아남기 위해 쓰레기통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구분해야 했는지, 그의 끔찍한 기억―트라우마―에서 한순간도 그의 삶이 빗겨난 적이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닉의 범죄를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정의를 세우기 위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의 분노는 일곱 살 때부터 손상되지 않고 정박해 있었음으로.
 하지만 벤츠의 운전석에 앉아 삶의 복구를 향한 남쪽으로의 운전은 닉에게 붙잡혀 감금으로 향한 북쪽으로의 운전으로 전환되고 나무의자에 묶인 채 닉에게 납치된 포로가 되고 만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혼란스럽지는 않은 자신의 상태에서 다시 한 번 그의 인생 전체, 그가 어린 시절이었을 때 패배와 승리를 동시에 확신한 어머니의 눈동자, 유대인이기에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승리할 방법, 그 모두를 생각한다.
 한편, 양부모의 집에서 방치된 채 자란 닉, 양성애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 때문에 그가 양성애자임을 인정한 순간 곧바로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닉은 나무의자에 묶인 채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스탠리를 보며 그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핍된 부분과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그들의 인생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닉은 비틀리고 노골적인 거울을 쳐다보는 것 같은 스탠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임을 결심한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기력하게 누워 고통의 강을 둥둥 떠내려가는 것. 그래. 저항해야 해. 거기에 굴복 당해선 안 돼.

 스탠리는 그의 삶 전체를 지배했던 생존이라는 투쟁―일곱 살 소년과 그 소년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아홉 살 소년 아벨, 삶과 죽음이라는 혼돈으로부터의 구원, 나치 제복에 대한 갈망과 혐오―에 다시 한 번 대비한다. 그들―닉의 일행, 스킨헤드족, 나치 노인―과의 심리전을 벌이고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한 후 홀로 그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스탠리는 그들로부터 받은 모욕과 고통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스킨헤드족 청년들을 손쉽게 처리하고 나치 노인의 옷을 벗겨 알몸으로 나무의자에 묶어놓은 스탠리는 그의 나치 제복을 완벽하게 차려입는다. 이제 그는 스테인슬라우 슈무엘 페코스코비츠와 현재의 그를 분간할 수도, 과거의 감정과 현재의 감정을 다른 두 공간에 떨어뜨려놓을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인다. 단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던 생존을 위한 짐승의 원초적 감각이 그를 지배한다.

 다른 누군가가 스탠리 페케의 자리를 인계받는다. 그리고 스탠리 페케는 감히 그 누군가를 저지하지 못한다.

 이제 닉과 스탠리 페케, 두 사람만의 전쟁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치 제복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당당한 모습의 자신과 부상당해 숨을 헐떡이는 닉의 상황을 지켜보는 스탠리는 닉에게서 아벨을, 자신에게서 유대인을 학살하는 나치 군인을 연상시키는 통제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 이곳에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은 아벨임이 분명하다. 고통에 시달리는 아벨임이. 그는 여러 해 동안 이곳에 있었다. 자그마한 아벨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를 분노하게 한 것과 그를 멈추게 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치 제복의 스탠리. 그는 과거를 다시 겪고, 유대인의 입장과 독일군의 입장에 동시에 몰입하며,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한 끝없는 저항과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과거로부터의 해방, 비록 영원한 해방은 아닐지라도 그의 남은 생에 약간의 평화를 가져다줄 해방을 맞이한다.

 스탠리는 실제로 과거로부터 탈피한다. 과거를 비와 진창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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