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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가족놀이 ㅣ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독특한 소재의 추리극인 미야베 미유키의 <가상가족놀이>는 인터넷이라는 초현실적 가상공간과 취조실이라는 숨막히는 현실적 공간, 대비되는 두 공간에서 모든 사건이 전개된다. 무너진 가족이라는 공동체,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 속에 단절된 대화로 서로를 공감할 수 없게 된 가족의 비극은 비단 가상가족놀이를 하는 아버지(도코로다 료스케), 어머니(미타 요시에), 가즈미(가하라 리쓰코), 미노루(기타조 미노루)만이 아닐 것이다.
중년의 가장(家長) 도코로다 료스케와 그의 내연녀인 이마이 나오코는 비슷한 시기에 살해된 채 발견되고, 료스케에게 인터넷상에서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사실에 대해 평소 남편의 바람기를 익히 알고 있던 그의 아내 하루에와, 아버지와의 잦은 갈등으로 부모에게서 벗어나길 바랐던 딸 가즈미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절망과 분노라는.
“난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화가 나요. 어머니나 내게 불만이 있었겠지만, 그런 불만은 우리도 있었고, 우리 몰래 그런 짓을 하면서 우리가 어떤 심정일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 걸까요? …”
범인을 찾기 위해 도코로다 료스케와 함께 가상가족놀이를 했던 사람들은 취조실로 불려 들어오고, 도코로다 가즈미는 형사와 함께 매직미러를 통해 그들을 지켜본다.
<가상가족놀이>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살인사건 자체와 관련된 인물보다 많은 인물들을 형사로 등장시켰고 그들의 미묘한 관계나 각기 다른 업무, 수사 과정과 협력 등 자세한 내용을 묘사했다. 이는 이 책의 모든 배경이 용의자들이 있는 취조실과 매직미러를 통해 그들을 지켜보는 도코로다 가즈미의 또 다른 방이라는 좁은 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며,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과도 극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편 ‘가상가족놀이’에서 어머니 역할을 한 미타 요시에, 딸 역할을 한 가하라 리쓰코, 아들 역할을 한 기타조 미노루는 취조실에 모두 모이게 되고 서로를 의심하는 동시에 료스케의 과거 행적과 관계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도코로다 료스케와 처음 인터넷에서 가까워진 사람은 실제 그의 딸과 이름이 같은 가즈미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리쓰코였다. 그녀는 영화 게시판 ‘시네마 아일랜드’라는 곳에서 료스케와 가까워 질 수 있었고, 실제 가족과의 관계에서 고독만을 느낄 수 있었던 그녀는 ‘가상가족놀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그러니까 집에서 저는 늘 혼자예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도 혼자, 어머니도 혼자.”
“… 인터넷 속에서 아버지가 생긴 거예요. 늘 원했던 타입의 아버지가 말이에요. …”
그렇게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들이 함께 <아메리칸 뷰티>를 보고 왔다는 글을 올리자 미노루가 아들 역할로 ‘가상가족놀이’에 참여하고, 후에 어머니 요시에도 참여하게 된다.
“우리는 다들 외로워. 현실 생활 속에서는 그 누구도 도저히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진정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독한 거야. …”
/ “너희 가족은 편한 쪽을 선택하면 그만이라는 관계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로구나. 인터넷이라 그런 걸까?”
현실을 살아가며 가상이라는 또 다른 현실에 살아가는 그들은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으며,―실제 가족 또는 그 어떤 관계와의 삐걱거리는 현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을 택하기 보다는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의 간편한 선택지로 눈을 돌려 이상적 관계를 연출하고 연극하는 우리는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현실 속 외로움을 가상현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음은 머지않아 혼란과 환멸에 깨지기 마련이라는 잔인한 법칙도 피하지 못할 뿐이다.
무엇보다 치밀하고 작가의 훌륭한 선택이었던 건 그들이 함께 봤다는 영화가 <아메리칸 뷰티>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욕망의 눈이 멀거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거나, 자의식이 결여된 삶을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딸의 친구 혹은 그 나이대의 여자와의 섹스나 정서적 교감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료스케와 관계가 있는 여성들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의 진짜 딸 가즈미와 그들의 또 다른 관계를 의심하게 만들고 붕괴된 가족을 생각하게 만든다.
취조실의 숨막히는 상황, 그리고 취조실을 지켜보는 가즈미의 분노를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준비한 이중반전과 함께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가상가족놀이>는 치밀하게 짜인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찾아가며 겪는 긴장감 가득한 소설이라기보다는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감정, 사회적 문제를 암시하는 사건 등을 읽는 재미가 가득한 소설이다. 사건 자체와 관련된 인물보다 형사들의 수가 많다는 점도,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된다는 점도, 사건의 소재도, 모두 독특하다. 결말 역시 그렇다. 범인은 정의와 복수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하지만 그―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날개는 거짓과 진실처럼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