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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순호선사 평전
방남수.임병화 지음 / 화남출판사 / 2016년 8월
평점 :
1902년에 태어나 한 시대를 살다간 한국 불교의 큰 산 청담순호선사.
태어나고 살아간 시대가 격동의 시대와 맞물려 스님의 인생도 그와 같이 격동적으로 흘러갔다.
일제강점기 경남 진주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스님이 태어난 진주는 나도 무척 잘 알고 있는 지역이다.
학교를 진주에서 다녔고 10년 정도 그곳에서 살았다.
옥천사, 해인사 등 친근한 절들이 스님이 먼 곳에 있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민중과 가까운 곳에 있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이 출가한 고성 옥천사는 며칠전에도 다녀온 곳이다. 시댁이 고성인데 시댁과 무척 가까운 거리에 옥천사가 있다. 오래된 고찰로 전통의 향기와 맑고 깨끗한 기운이 흐르는 곳이었다.
이 곳에 스님이 머물렀다고 생각하니 그 기운이 더욱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앞서 말한대로 스님은 1남 3녀 중 장남이었고, 스님의 아버지는 15세 때 돌아가셨다.
25세 때 옥천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이미 부인이 있었고,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스님의 마음,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수많은 감정들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니 나는 그저 속인에 불가한 것이리라.
그렇게 처절하게 수행을 거듭하던 스님은 30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속가하고 만다. 성주 이씨 가문의 대가 끊기게 생겼다는 노모의 간곡한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파계하고 만 것이다. 효행의 길을 가고 지옥에 떨어지겠다는 결심의 순간 스님의 심정을 어땠을까.
그렇게 파계로 얻은 아이는 딸이었다. 스님은 그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자결하려고 하지만 그 목숨을 한국 불교계를 위해 써달라는 다른 스님의 간곡한 만류에 마음을 돌린다.
그 후로 10년간 참회로 맨발 수행을 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그의 이모와 아들을 출가시킨 것처럼, 스님 또한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그의 딸을 출가시켰다.
스스로를 묶어 괴롭히던 속세의 끈을 수행의 길로 이끈 것이다.
지금 우리도 무언가에 묶여 힘들어하고 있다. 그 속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묶은 것은 나 자신일지 모른다.
끊임없는 수행으로 한국 불교계의 큰 산이 된 청담순호선사. 그의 생을 따라 그 발자취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