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태반을 소설을 쓰거나 읽어온 덕에 소설의 아량과 포용을 배우며 조금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편혜영 작가는 오랜만에 소설집을 내며 이 작품에 대한 소회를 밝힙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한 '소설의 아량과 포용'이란 무엇일까요.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포인트가 아닐까 하는데요.
인간은 재난과 사고, 질병을 완전히 피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작품 말미에 있는 인아영 평론가의 말처럼 작가는 그런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오래도록 이야기해 왔습니다.
≪새들의 사회성≫, 이번 작품은 편혜영의 작품 세계에 익숙한 독자라면 전작과는 다른 온도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희망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는데요.
삶을 응시하는 작가의 조용한 시선이 작품의 온기를 더하는 독자의 마음에 오래 머물게 될 작품입니다.
편혜영의 다음이 궁금한 독자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신간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 만나볼까요?
엔씨소프트의 단편 소설 프로젝트 NC FICTION PLAY(2021년)에 실렸던 단편 <우리가 가는 곳>(2021)을 시작으로 <새들의 사회성>, <포도밭 묘지>, <초록 스웨터>, <아파트먼트>, <목욕>, <자매들>, <남은 사람>까지.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남편의 폭력으로 자발적 증발을 선택한 오영지와 '옆집'이란 이름의 실종 대행업을 운영하는 나의 여정을 그린 단편으로, 자신의 삶에서 사라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줍니다.
표제작인 <새들의 사회성>은 신도라는 이름의 동창을 둔 나의 일상을 통해, 희망이란 말조차 사치가 되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삶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정도'의 신념이 가져오는 인생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포도밭 묘지>는 수영, 한오, 윤주와 나.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 이야기로,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과로사로 생을 마감한 한오의 묘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는데요. 끝내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애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초록 스웨터>, 아파트에서 남들처럼 살아보는 게 꿈인 화자의 엄마 이야기를 그린 <아파트먼트>, 아빠의 죽음을 통해 생전 소원한 사이였던 부자 사이를 되돌아보는 <목욕>
언니 정오와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던 정서가 갑작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자매들>, 그리고 다리에 입은 화상보다 더 큰 상처를 마음에 지닌 채 삶을 살아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그린 <남은 사람>.
모두 8편에서 그려내는 인물들은 저마다 닿고 싶었지만 끝내 가닿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원하는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 많고, 희망보다 고통에 익숙하고, 견디며 살아낸 혹은 살아내야 할 시간이 긴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쉽게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삶을 조용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독자가 그들의 삶에 냉담해지지 않도록 다정히 손을 내밉니다. 마침내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편혜영 작가의 작품은 쉽게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편혜영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서늘함과 불편함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들의 사회성≫를 읽는 내내, 차가운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너머에 상처 입은 삶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깊고 다정한지를 발견했습니다. 사람을 향한 온기를 놓지 않는 작가의 새로운 세계를 만난 작품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은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희망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새들의 사회성≫, 뜨거운 여름이 가기 전에 만나보면 어떨까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