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1 : 인간의 자각과 개명 - 동서양 고중세 철학과 미래 세계에 대한 성찰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1
백종현 외 지음, 백종현 엮음 / 21세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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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당대의 내비게이션이다.”

 

철학만큼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오해와 편견을 받아 온 학문도 없을 텐데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마주하는 인생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학문은 무엇인가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혜와 사유를 통해 인생의 통찰과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학문, 바로 철학이 떠오를 것 같은데요


철학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은 사회가 복잡하고 미래가 불안할수록 보다 명확해지는데요. AI와 챗GPT에 의해 인간의 지적 영역이 침해 당하고 사고 체계마저 위협 받고 있는 현 시점이야말로 철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깊은 사유와 정통 인문학에 목 마른 독자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학자 74인이 동서양 고대 종교 사상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모든 주제를 망라해서 펴낸 철학 대전의 출간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한국 철학계의 거목,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기리기 위해 마련한 거대 프로젝트로 탄생하게 된 철학 전집으로, 제목은 이명현 교수가 1989년에 현실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철학을 현실에 뿌리내리도록하기 위한 일환으로 창간한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서 따왔습니다.

 

일생을 철학과 현실의 조응관계 연구 힘쓴 이명현 교수의 철학 사상이 곳곳에 녹아있는 이 시리즈는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필두로 다양한 세부 전공을 가진 집필진이 참여했는데요. 독자들은 그만큼 폭넓고 다채로운 주제와 견해를 접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새로운 시선을 만나는 값진 시간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인간의 자각과 개명>에서는 서양 고대 중세 철학과 미래 세계에 대한 성찰을, 2권 <인간 문명의 진보와 혼란>에서는 서양 근대 철학과 감성과 이성의 경합을, 3<인간 교화의 길>에서는 유불도 삼교를 비롯한 참인간을 향한 동양 철학 전반에 대해 다루고, 마지막 4<현대 문명의 향도>를 통해서는 인류 문명 진보를 위해 현대 철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합니다.


모두 4권에 담긴, 2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 다루는 주제와 견해는 이토록 장대하고 다채로운 반면, 시리즈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 의식은 하나로 귀결되는데요. 철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고찰입니다. 방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서울대 철학과 백종현 교수가 1권에서 밝힌 소회에 잘 드러나는데요.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한 철학자 또는 한 철학 학파의 어떤 사상이 그 철학자의 어떤 생활 체계, 어떤 현실 인식에서 발생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글모음이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단지 현실에 관한 철학 이야기뿐만이 아니고, ‘이상에 관한 철학이라도 그것의 발단은 철학자의 현실 기반임을 이야기하고 있다.”(p.4, 1)

 

1권의 서설에서 백종현 교수는 한국 철학을 하다가 지닌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는데요. 보편성은 당연히 지녀야 하지만 특수성이 중요한 요소라고 밝힙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푸치니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는 베토벤을 한국 음악이라고 할 수 없듯이, 한국 철학이라고 할 수 위해서는 한국적인 요소와 문화의 특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요점은 철학이 지닌 관심이나 세계적인 영향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철학 이 한국어로 전개되어 한국의 정신문화 형성과 학술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p.63)라며, 한국어가 묻히면 한국 철학도 묻힐 것이라고 토로하는데요. 자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녔는 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머리는 언어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사상은 고유어의 빛깔을 지닌다. 이성만큼은 공통적이나, 정신은 각 언어에 의해 자기의 특별한 형태를 갖는다.”(pp.63~64) 에밀에 나오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을 인용해서,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화적 문제를 철학적 사고를 통해 해결하는 데 한국 철학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견해를 피력하는 모습에서 참 스승의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부터 니체와 헤겔, 동양의 공자, 맹자. 그동안 삶의 지혜와 통찰을 얻기 위해 찾아 읽은 철학서의 저자 또는 철학자와 사상가들로, 한국인이라는 특수성 보다는 인간이라는 보편성이 앞선 선택이었는데요. 이제는 특수성을 감안한 선택으로 보다 현실과 밀접하고 구체적인 실마리를 찾게 될 것 같습니다.

 

2권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깊이 고민했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 데카르트의 실천학으로 포문을 여는데요. 감성과 이성에 대한 철학자들 사이에 이견과 갈등, 인간성의 핵심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을 맞춰나가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근대성을 대표하는 칸트와 헤겔 철학을 다루고 있는 2권에서 맹자의 논어를 통해 얻은 통찰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됩니다.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라는 메타포 아시죠? 너무도 유명해서 철학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알고 있을 텐데요. 이행남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집필한 <헤겔의 철학에서 자유로운 주체의 개념>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자유로운 인륜적 주체로서 가족 관계에서 지닌 책무에 대한 헤겔의 사유를 엿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책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바람과 의지는 가족의 중요성과 가치를 객관적 사실인 에 그치지 않고 가족이 자신의 본질적인 삶의 요소로 인식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p.370) “헤겔의 철학에서 자유로운 주체는 자신을 우리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반추할 줄 아는 존재이자 타인의 곁에서 좋은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존재”(p.374)를 의미하는데요.

 

철학은 자신이 발 딛고 선 세계의 현재삶에서 실현을 촉진하고, ‘미래의 전망을 여는 시대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통해, 헤겔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이념이나 현상과 규범을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철학은 현실의 정신이 무르익은 다음에라야 시작될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p.344)

 

장자의 꿈으로 출발하는 3권에는 한국 동양 철학의 정수가 담겨 있는데요. 정원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집필을 통해, 조선에 대한 현실인식에 기반한 이이의 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4권에서는 20세기 철학의 양대 산맥 존재와 시간의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을 만나게 되는데요. 비트겐슈타인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이명현 교수입니다.


우리나라 철학계의 발전과 후배 양성에 힘쓴 그의 공로와 철학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이 시리즈는 한국 철학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동서고금을 망라한 철학 전반에 대한 구조를 파악하고 한국 철학의 정수를 체감하는 탐구의 시간을 선사할 텐데요.

 

74인의 철학자가 일상적인 이야기로 풀어 낸 철학의 진수가 담긴 4권의 책을 소장본으로 갖추게 된다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삶의 방향을 밝혀 줄 훌륭한 내비게이션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사상은 자기 시대가 해명해야 할 과제를 명료하게 함으로써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오늘 이 땅은 이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을 정면 승부를 거는 지적 용기와 실천력을 지닌 생동하는 철학자를 요청하고 있다. 신문명은 새로운 개념적 제도, -문법(new-grammar)을 요청한다. 이러한 철학적 작업이 산출하는 신문법이 다름 아닌 그 시대를 위한 내비게이션(navigation)이다.”(p.15, 4)


<21세기북스 출판사에서 도서 전집을 협찬 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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