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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 여행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9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황승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하이네 여행기≫는 을유세계문학전집 129번째 작품이다.
1800년 전후에 여행자로서 체험이나 관찰을 기록한 여행기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장르였다고 한다. 북해의 노르더나이섬을 두 번 방문하고 그곳에서 체류했던 하이네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여행기를 썼다.
이 책에는 그가 4권으로 출간한 ≪여행기≫ 가운데 대표작 <북해(Die Nordsee)> 연작과 <이념―르그랑의 책(Ideen―Das Buch Le Grand>을 포함해서, 선별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이 책에 수록된 연작시는 오늘날 평론가들에게 모자이크 작품 같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다.
<황혼>으로 시작되는 북해 1부에는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황혼 무렵 바닷가에서 해넘이 보며 밤을 맞이한다. 조각배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뒤를 하고 어느새 날이 밝았다. 잔잔해진 바다를 향해 태양은 빛줄기를 던지고 조각배는 "흔들리는 보석에다 푸른 고랑을 만들며"(p.39) 앞으로 나아간다.
북해 1부에 실린 <황혼)에서 <평화>까지 연작시 12편이 하나의 서사가 되어,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조각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탈라타, 탈라타(thalatta, thalatta), 바다야 바다야! 기원전 401년 페르시아 왕위 쟁탈전에 용병 1만 병과 함께 고용된 크세노폰이 위기의 순간에 흑해를 발견하고 환호하던 소리(p.53, 각주에서)로 시작하는 2부. 사랑스러운 바다 위에 날카로운 번갯불이 경련을 일으킨다. 바닷물은 거칠게 출렁이고, 그리스 신화 속 북풍의 신 보레아스(Boreas)가 등장한다.
북해 2부는 북해 1부 보다 좀 더 장엄한 서사가 펼쳐진다. 삼지창으로 분노의 파도를 만들어낸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비롯 북풍의 신 보레아스까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긴박감을 선사한다.
북해 3부에서는 노르더나이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과 나폴레옹의 신화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한다. 연작시가 아닌 산문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이 아닌 현실 참여적 작품 활동을 했던 혁명적 저널리스트로서 하이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1830년대와 1840년대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작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산문이 천대받던 시기에 여행기와 산문의 문예란을 예술 형식으로 드높이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가 산문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옛날 연극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념―르그랑의 책, 이 작품은 모두 20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가장 깊이 있는 산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랑과 자유와 진리를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와 같은 구상 또한 연작시처럼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다.
부제에 나오는 르그랑은 프랑스 혁명 사상을 북소리를 통해 매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역사적, 정치적 이념이 담겨 있는(p.297) 이 작품은, 그의 개인적인 체험을 다룬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눠서 읽으면 좀 더 쉽고 재미있을 것이다.
괴테의 여행기와 비교되는 이 작품은 일반적인 여행기하고는 다르지만, 다양한 장소와 시간대를 오간다는 측면에서 탐방 형식을 띤 여행기라고 보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다.(p.298)
이 책은 그의 문학 세계와 더불어 현실의 모순이나 부조화를 잘 활용한 풍자의 대가로 불리는 하이네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념―르그랑의 책의 제14장, 이념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의 멋진 풍자를 만날 수 있다.
"원고를 가지고 있다가 9년이 지난 다음에 출간하라"라는 호라티우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후원자의 식탁에 의지하는 호라티우스와 달리 그들은 후원자의 식탁이 없으니 "9년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비법도 함께 알려주어야 했다"(p.251)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독자들은 더 이상 하인리히 하이네가 서정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문학가로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와 같은 문학 사조가 아니었다. 그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의 토대를 다지는 문학 활동이었다. 하이네가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이네 여행기≫, 이 책과 함께 그의 시처럼 아름답게 깊어가는 계절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을유문화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고 싶은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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