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켜야 할 세계(다산북스, 2023)는 문경민 작가가 쓴 장편소설로, 작가에게 2023년 혼불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정윤옥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그녀가 1년 전까지 일했던 고등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p.6,가제본) 책을 펼치자마자 만난 문장이다. “국어교사 정윤옥의 마지막 한 해를 다룬 내용이라는 정보를 책 소개에서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첫 문장부터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서사를 풀어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주인공 정윤옥은 중등 국어교사였다. 화약폭발 사고로 잃은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공장에 다닌 엄마 그리고 뇌병변장애가 있는 남동생 지호가 그녀의 가족이었다. 정년을 앞둔 윤옥은 눈 내리던 어느 날, 자정 무렵 집을 나섰다가 눈길에서 넘어져 혼수상태로 1년을 더 살다 생을 마쳤다. “지켜야 할 세계라는 책 제목처럼 윤옥에게는 지키려고 한 세계가 있었다. 이 장편소설은 윤옥과 그녀가 지키려고 했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 같더라.”, “어쩔 수 없었다.”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당위성을 구하는 이 한마디를 통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면죄부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연일 흘러나오는 뉴스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윤옥처럼


가족에게 불편한 존재였던 남동생 지호는 10살 때 원주에 있다는 소망의 집으로 보내졌다. 대학생이 된 윤옥이 동생을 찾아 간 소망의 집 현실은 처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호는 없었다. 지호가 그곳에 없다는 윤옥의 통화에 그런 애들은 원래 오래 못 산다. 그러니 생사를 묻지도 찾지도 말라”(p.90)고 엄마는 말했다. 지호를 보내던 날도 그랬다. 이웃 수림 아주머니는 그 일이 지호도 살고 윤옥이도 살고 윤옥 엄마도 모두 다 같이 사는 일”(p.70)이라고 말했다. 그날 같이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삼켰던 윤옥의 눈에서 오늘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윤옥이 가르치는 학생 가운데 지호와 같은 장애를 가진 시영이가 있다. 시영에 대한 윤옥의 태도에서 지호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 자신에 대한 회한을 느낄 수 있다.

 

윤옥은 허리를 숙여 시영을 가볍게 안았다. 시영이 고개를 돌리며 작은 소리로 또 아, 하는 소리를 흘렸다. 시영이 이렇게 할 때마다 윤옥은 가슴이 아팠다. 시영의 유난히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윤옥의 뺨과 턱을 간질였고, 윤옥은 그것이 그만 서러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윤옥은 시영의 어깨를 쓸어주며 말했다. “애썼다. 고맙다. 시영아.”(pp.29~30,가제본

 

지난여름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 서이초 교사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언제부터인지 학교에는 심상치 않은 현상이 생겼다. 수업의 주체가 교사와 학생이 아닌, 학부모가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카프카를 비롯한 대문호들의 이름을 말하며 은근히 뻐기며 즐거워하던 학생들과 함께 한 세계 문학 작품을 활용한 윤옥의 수업처럼, 교사와 학생들이 만들어가던 수업은 학부모가 제시한 수업 가이드라인과 민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 책에는 교사 평가를 위해 수업 촬영을 요구하는 학부모와 학생을 교육수요자로만 바라보며 학부모 민원을 받은 교사를 사고뭉치 취급하는 관리자가 나온다. 이처럼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생활지도는 정서적 학대로, 학생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아이만 미워하는 것으로 변해 학부모에게 민원 대상이 되고 담임교체를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윤옥이 느낀 위축과 부담감은 지금 대한민국 교사의 현실이기도 하다.                   

 

정말로 그런 걸까.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중증장애를 지닌 남동생 지호를 생면부지의 사람을 딸려 낯선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교사 정윤옥 국어 수업 관찰 분석 보고서를 만든 학부모들에 의해 흔들리는 교권도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수록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가독성 문제가 아니었다. 간결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표현한 한 인생과 사회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허투루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부분은 1부에서 3부까지다. 사전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보내 준 가제본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거기까지였다.

 

지켜야 할 세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국어 교사 정윤옥이 던지는 화두가 될 것 같다


#문경민 #지켜야할세계 #사전서평단 #다산북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