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시리즈
넬리 블라이 지음, 오수원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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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심심해서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짧은 글을 봤다.

어떤 사람이 정신병원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은 정신병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정신병원의 실태를 알기 위해 일부러 들어갔고, 정신병원 안에서 평소처럼 행동했지만 정상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짧은 글이라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지만,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내지 못하다니. 그게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알게 된 건데 정신병원에 잠입한 사람은 '넬리 블라이' 라는 기자였고, 이 책을 쓴 저자다.

실명은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으로, '넬리 블라이' 라는 이름은 19세기 후반이었던 당시 여성 기자는 필명은 쓰는 게 일반적이어서 가지게 된 이름이었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넬리 블라이는 정신병원에 잠입한 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를 구하려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책 출간을 제의받아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나처럼 '정신병원 잠입' 이라는 소재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책은 신문사 <뉴욕 월드> 로부터 정신병원 잠입을 제안받는 것에서 잠입 후 자선 기관 감독관들과 다시 한 번 정신병원을 방문하는 것까지 기록되어 있다.

넬리 블라이의 용기는 처음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아래와 같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잠입을 하기를 무르지 않은 것이다.


"그곳에 들어가 실태 조사를 마치면 어떤 방법으로 저를 빼내주실 건가요?"

"잘 모르겠어요. 거짓 환자 행세를 한 목적과 신분을 밝혀야 할 때가 오면 확실히 빼내줄 거예요. 그러니 일단 잠입합시다."

(p.17)

만약 내가 저런 확실치 않은 답변을 받았더라면, 넬리 블라이처럼 잠입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넬리 블라이는 넬리 브라운이라는 가명으로 '여성 노동자의 집' 이라는 시설에 들어갔고,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정신이 온전치 않다고 어필하기 위해서 연기도 하고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다.


잠의 꼬임에 넘어가 그 손아귀에 잡힐 것이 두려웠던 나는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되돌아보는 인생이란 어찌나 전부 기이해 보이는지!

인생에서 겪는 하나의 사건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운명에 나를 묶어놓은 하나의 연결고리에 불과하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스란히 다시 사는 기분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을 떠올려보았다.

옛 친구들을 만날 때는 긴장과 흥분으로 짜릿했고, 적을 다시 만나면 고통으로 가슴이 저렸다.

예전에 느꼈던 고통과 기쁨이 다시 느껴졌다.

고이 덮어두었던 내 인생의 페이지들을 다시 들추니 과거의 일이 현재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p.38)

넬리 블라이가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이야기는 우습기도 했다.

정신병 진단을 받기 위해 하는 넬리 블라이의 행동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서술하는 넬리 블라이의 글에서도 유머감각이 뭍어났다.


잘생긴 젊은이가 서 있었다.

풍모와 말투가 신사다운 사람이었다.

(...)

이렇게 잘생긴 청년 앞에서 정신이상자 연기를 해야 하다니!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젊은 여성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p.79)

넬리 블라이의 대단한 점이 여기에서도 드러나는데, 정신병원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정신병이 없다는 사실을 들켜서 정신병원에 잠입하지 못 하게 되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 정체가 탈로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넬리 블라이가 그렇게 걱정한 것과 달리,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까지의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넬리 블라이가 결국 블랙웰스 섬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한 뒤에는 끔찍한 정신병원의 실태들이 이어졌다.

일을 제대로 안 하고 간호사와 의사는 노닥거릴 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은 환자를 돌보는 게 아니라 거칠게 다루고 놀리는 게 일이었다.

환자들을 얼음장처럼 차갑고 더러운 물로 억지로 목욕을 시킨 후 물기를 닦지도 않은 채 옷을 입혀 추운 잠자리에 들게 하는 건 읽는 내가 다 추울 지경이었다.

형편없는 식사도 잘 묘사되어 있는데, 글로 적혀 있지만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어서 안타까운 환자들의 사연도 읽을 수 있었다.

정신병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가난하거나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몸이 아픈데 정신병원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은 며칠 사이에 병이 더 심해졌다.

나도 넬리 블라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환경에 노출된다면 정신병이 없는 사람도 정신병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넬리 블라이와 친하게 지내던 한 사람은 결국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른 환자들을 통해 들은 다른 병동의 상황은 더 끔찍했다.

이 모든 게 단 열흘 동안 취재한 이야기들이라니... 나에게는 한 달 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넬리 블라이가 기사를 쓰고 조사원들과 다시 블랙웨스 섬의 정신병원에 방문하게 되는 부분은 현실적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화였고, 픽션이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줬다.

하지만 넬리 블라이의 정신병원 잠입 취재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넬리 블라이의 폭로 기사 덕분에 뉴욕 시기 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예산액을 100만 달러 더 책정하는 등의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신병원 잠입' 이라는 사건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넬리 블라이라는 사람 자체 또한 인상적이었다.

책의 뒷부분에 저자 소개란이 있는데, 넬리 블라이의 어린시절 부터 세상을 떠나기 까지가 적혀 있었다.

넬리 블라이는 기자가 된 계기 또한 남달랐는데, 즐겨 읽던 신문에 성차별적인 내용의 칼럼이 올라오자 반박문을 보내게 되면서 편집장의 눈에 띈 것이었다.

이때는 1800년대 후반이었는데,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정신병원 잠입 취재 이후에도 넬리 블라이의 행보는 남달랐다.

세계 일주 기록을 세우고, 50세의 나이에 종군 기자 활동을 했으며, 이후에는 고아들을 돌보며 입양을 주선했고, 세상을 떠날 때에는 남은 재산을 기부했다.



책의 마지막 저자 소개까지 모두 읽고, 넬리 블라이가 시대를 뛰어넘는 '걸 크러쉬'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본편은 넬리 블라이의 유머감각이 느껴지는 서술 방식 때문에 무겁지만은 않으면서도 당시 블랙웰스 섬 정신병원의 끔찍한 실태와 정신병이 있는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잘 담겨있었다.

출판사 모던아카이브가 넬리 블라이의 책에 애정을 가지고 출판했다는 건 책의 앞에 있는 <출간에 부쳐>에서 알 수 있었는데, 넬리 블라이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를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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