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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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파리대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윌리엄 골딩의 대표작이어서일 뿐만이 아니라 스토리가 흥미로워 보여서 읽고 싶었던 작품인데, 전쟁 중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소년들이 주인공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지금까지 읽지 않은 건 기존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판본이 번역이 읽기 어려울 정도라고 악명 높았기 때문이었는데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그 출판사를 무척 좋아한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전집으로도 <파리대왕>이 출간되어 드디어, 그리고 오랜만에 세계문학소설을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은 전쟁이 한창일 때 크고 작은 영국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하며 어른 하나 없는 저들만의 세상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면서 시작하고, 금발의 주인공인 랠프가 그들의 대장이 되어 (소라를 든 사람이 발언권을 얻는 등)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무인도에서의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겁에 질렸다가도, 곧 어른들이 없는 세상을 마음대로 뛰놀며 즐기게 되는데….
이 모습을 보고 (나도 어른이어서 그런 걸까) 소년들 중에 그나마 이성적이어서 참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새끼돼지 무어가 말한 대로, ‘철 없는 철부지들’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구조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무인도에서 지내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획적으로 움직이기는커녕 물놀이를 하고 모래성이나 쌓고 자빠져있다니!

그래도 영원히 그리 지낼 수 없는 법인지라, 소년들의 대장 랠프는 정신을 차리고 구조를 위한 봉화를 올려 유지하는 등 재정비를 시도하지만, 초반부터 그와 은근히 부딪치던 사냥부대의 우두머리 잭 메리듀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야 만다.
잭 메리듀는 무인도에 불시착하기 전에는 성가대를 이끌었는데, 그 때문인지 소년들의 대장이 되고 싶어했던 인물이다.
거기에다가 다른 것보다 사냥에 열을 올리며 흥분하기까지 하고 랠프와는 여러 면에서 맞지 않았으니, 터질 게 터진 셈.

또 안 그래도 이들보다 어린 아이들에게서 촉발된, 이 섬에 괴물같은 게 있다는 공포 또한 그들에게 걸림돌이었는데, 때마침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매달고 탈출한 조종사의 시체가 섬 바위틈에 끼인 탓에 그것을 날개 달린 괴물로 오해한 소년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하고, 잭 메리듀를 필두로 이성이 마비되고 야만성이 깨어난 소년들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파리대왕>은 상징과 갈등 주체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대장 랠프와 새끼돼지 무어가 속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무리는 문명 사회를, 사냥부대 잭 메리듀와 여러 소년들이 속한 원시 부족처럼 몸에 칠을 하고 살생에 열을 올리며 춤을 추는 무리는 야만적인 본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문명을 벗어나 원시를 동경하는 풍조에 대한 우화 소설로, 이 작품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진 작품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책 말미에 있는 작품 해설을 보니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나쁜만은 아닌 것 같은데, 명확한 말로 정리된 해설을 읽으니까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감상이 확실히 정리가 잘 되더라)
인간의 잔학성은 외부로부터 발생하는가, 아니면 우리 내부로부터 발현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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