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 그동안 몰랐던 서양미술사의 숨겨진 이야기 20가지
허나영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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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상황은 예술에 영향을 주고 많은 예술 작품에는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에 역사는 미술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하며 미술 작품은 역사를 보다 흥미롭게 접할 수 하는, 서로 상승효과를 내는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가 이를 보여주는 책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미술부터 20세기 미술까지를 20가지 이야기로 다루는 이 책을 읽으면 시대별 주요 미술사를 파악할 수 있고, 더욱이 작품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욕망까지 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서평에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헤게소의 묘비>라고 불리는 비석을 소개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투표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는 민주정치로 널리 알려졌지만 노예와 여성을 제외한 시민권을 가진 남성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는데,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룬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어머니가 아테네 시민의 딸이어야만 진정한 시민”이라고 하여 어머니가 가문의 명성에 역할을 하게 된 이후로 아테네 여성의 묘비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처음에 사진을 보았을 때에는 별 감흥이 없던 작품이 좀 더 흥미로워 보이게 했다.


(...) 어머니의 출신이 아테네 시민의 자격에 중요 요소가 되었고, 그만큼 가문의 명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쯤 아테네 여성의 묘비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우아하게 보석으로 치장을 하는 헤게소는 아테네 시민들의 귀감이 될 만한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이었다. 실제 이 묘비는 가족들만 볼 수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기념비적인 조각들과 함께 길가에 설치되어 있었다. 즉 일반인들도 누구나 이 묘비를 보고 헤게소와 더 나아가 그의 가문의 높은 덕목을 칭송하게 한 것이다. 그렇기에 묘비 속 헤게소의 모습은 개성이 드러나기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프레임 속에서 여성이 지녀야 할 덕목을 표현하고 있다.

p.30


장 바티스트 그뢰즈가 소작농의 딸이 약혼하는 모습을 그린 <마을의 약혼녀>는 사실적인 묘사로 작품으로 당시 농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혼자의 손에 들린 약혼녀의 아버지가 준 지참금 주머니나 약혼을 위한 증명서를 작성하는 시청 직원의 모습을 통해 당시 농가의 약혼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분위기가 약혼이라는 경사를 그린 것이 아니라 마치 초상집을 그린 듯하니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증하는 때에 이 책을 읽어서인지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에 대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대작들이 대거 탄생하며 서양미술사의 큰 분기점이 된 르네상스 작품에서 흑사병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흑사병 때문에 예술계에도 어둠이 찾아왔을 것 같지만 반대로 신에게서 안전과 건강을 보장받으려는 유럽인들의 마음이 모여 유럽의 예배당이 화려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부유한 이들이 천국으로 향하는 열쇠를 사면서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후원을 했다는 말이다) 성당 내부도 예술 작품으로 장식되었다니 의외였다.


스페인독감이 속수무책으로 널리 퍼진 데에는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이 병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도 있었다. 당시 16억 명 정도의 유럽 인구 중 6억 명이 독감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하니, 그 감염률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이에 전염성을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의무화한 경우도 종종 있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남성이 전차 탑승을 거부당하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에 ‘무오년 독감’이란 이름으로 일본, 중욱 그리고 조선에도 유행하였다. 조선 내에서는 740만여 명이 감염되었고 그중 14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스페인독감 혹은 무오년 독감으로 불리는 감기는 전 세계에 퍼졌고 사람들은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혁신적인 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던 두 화가도 스페인독감을 피하지 못했다.

p.306


또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독감이 퍼졌다.
(전쟁에 영향이 갈 것을 걱정하여 언론을 통제한 다른 나라와 달리 새로운 독감의 심각성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스페인이 발원지가 아님에도 스페인독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니 스페인으로써는 참 억울한일이다)
스페인독감은 당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차를 거부당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까지 있어 지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더욱 와닿았다.

책에서는 스페인독감을 피하지 못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했는데, 둘은 스페인독감으로 엮이기 이전에 오스트리아에서 빈 분리파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구스타프 클림트는 뇌졸중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스페인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기와 함께 하는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그리던 에곤 쉴레도 임신한 상태인 배우자 에디트가 스페인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나면서 동료와 아내와 아기를 잃고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알고 에곤 쉴레가 그린 <가족>을 보면 먹먹해진다.

또 이렇게 시대 상황이 작품에 반영되고 작품에 남은 당시의 흔적을 알아가다보니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밖에도 성폭력으로 인해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고통을 설득력 있는 뛰어난 작품으로 그려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그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몇 번을 봐도 강렬했고, 여성화가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도 좋았으며 미술 후원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었다.


(...) 그런데 수잔 발라동의 경우 한 가지 독특한 작업을 병행했다. 모델을 따로 두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자신의 누드를 그리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누드 자화상’이다.
(...)
그녀가 노년에 그린 <가슴을 드러낸 자화상>은 현재의 시점에서도 도발적이다. (...) 이 그림 속 여인은 신화의 주인공도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 앞에 앉아있다. 더구나 모델은 여성, 화가는 남성이라는 도식과 달리, 모델과 화가가 동일한 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이 그림을 들여다보게 한다.
더불어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여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발라동 특유의 굵은 윤곽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그런데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치며 머리숱이 적어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기에 지울 수 있는 부분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자기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다. 이 그림 속 발라동은 분홍 드레스를 입고 즐거운 소녀도, 압생트로 괴로움을 달래는 세탁부도 아닌, 화가이자 어머니이며 여성인 한 사람의 모습이다.

p.335-337


책의 내용이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되기에 책에 담긴 이야기와 작품 중 하나만 고르자면 역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그의 작품은 꼭 보았으면 좋겠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과 같은 주제를 그린 다른 남성 화가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드러나는 그 차이가 당신에게도 무척 인상적일 것이다.


많은 성경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주제 역시 여러 작가들에 의해 표현된 바 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것이 유독 살인의 현장을 끔찍하고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카라바조의 유디트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 하지만 유디트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카라바조의 것은 훨씬 가녀리다. (...)
이에 비해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장면에 몰입하게 하고, 오로지 살인에만 집중하게 한다.

p.174-175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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