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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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에게 마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에서 사악한 여왕이 변신한 노파였고, 그 다음으로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만화 속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또래 여자아이였고, 또 그 다음에는 아름답고도 위험한 매력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마녀사냥의 역사가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으며, 마녀는 여성혐오와 여성억압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페미니즘적 의미가 추가되었다.
그래서 내가 마녀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마녀를 그려낸 작품들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령의 여인

처음에는 아버지, 그 다음에는 남편의 보호 아래 놓였던 중세의 여성은 과부가 된 후에야 약간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노파들이 가진 자유와 오랜 연륜에서 비롯된 지혜는 여성을 감시받아 마땅한 존재로 치부했던 남성을 공포에 떨게 했다. 노파들은 곧 마녀사냥의 훌륭한 먹잇감이 된다.

p.20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는 미술문화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해시태그 아트북 두 번째 책으로 마녀를 그린 40여 점의 작품을 수록했다.
(마녀로 분장한 사람이나 마녀로 오해받은 인물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마녀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여기에서는 통틀어 ‘마녀’라고 하겠다)

본격적으로 마녀를 그려낸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예술에서 마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갔고, ‘꼭 봐야 할 작품들’로 열여덟 점을, ‘의외의 작품들’로 스물두 점을 소개하고 있다.

마녀를 그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과 설치 미술도 포함된 마흔 점의 작품들은 시대순으로 수록되었고, 책을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에는 작품에 대한 글을 싣고 오른쪽 페이지는 해당 작품으로 채워서 되도록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지 않아도 되게끔 했는데, 책을 읽기 편하게 하는 이런 배치는 물론이고 작품 사진 자료의 인쇄 품질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 책을 손에 들고 넘겼을 때 내지를 만져보고 이 책은 안 좋은 인쇄 상태로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겠구나 했는데 정말 그랬다.
한 페이지를 모두 작품을 보여주는 데 할당하고 그것도 모자라다고 판단한 몇 작품은 다음 장에서 두 페이지를 꽉 채운 큰 그림으로 만날 수 있게 한 데다, 이미지가 흐릿하거나 모자이크마냥 깨지는 일 없이 선명한 편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단, 작품 사진 자료는 (네 개의 원형화로 구성된 <마녀들이 있는 장면> 같은 그림을 제외하고) 글에서 소개하는 주요 작품 하나만을 수록했기 때문에 글에 등장하는 다른 작품은 따로 찾아봐야 하는데, 만약 언급된 작품 모두의 사진 자료를 넣었다면 분량도 많아지고 지금처럼 글을 읽으며 그림을 보기 편하게 배치하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다.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를 읽으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마녀 키르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속 마녀들, 중세 소설 <아서왕의 죽음>의 삽화로 그려진 마녀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엔돌의 마녀, 러시아와 동유럽 동화 속에서 아이들을 잡아먹는 노파 바바 야가를 비롯한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마녀들을 볼 수 있었고, 17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 <마녀의 언덕-세일럼의 순교자>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했음에도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던 잔 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을 그린 <잔 다르크>에서는 역사 속 마녀(정확히는 마녀로 오해했던 것이지만)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허공의 마녀들>과 칠도 메이렐리스의 설치 미술 <마녀>였는데, 이 두 작품은 각자 판이한 느낌으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날아오른 세 마녀들이 한 남자를 생포했다. (...) 머리에 쓴 뽀족모자는 작은 뱀들로 장식되어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종교재판 때 죄인에게 씌웠던 모자 코로자coroza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포르투갈어로 ‘이단자 처형’이라 불렀던 공개 처벌 의식에 쓰이는 모자로 악명이 높았다. 고야는 종종 이런 장면을 그려서 종교재판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를 고발했다. 다만 마녀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코로자와 달리 가톨릭 주교가 쓰는 거대한 주교관, 미트라mitre처럼 중앙이 갈라져 있다. 여기서는 오로지 종교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 강조된다.

p.34


이렇게 다양한 마녀를 담아낸 작품들을 보고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뒤의 배경 이야기와 감상을 읽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 안에서 마녀의 이미지는 어떠했는지와 과거에 실제로 행해졌던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세일럼 마녀재판이 한창이었던 1692년으로 가 보자. 그해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청교도 마을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두 아이가 여자 셋을 마녀로 지목한 이후 온 마을에서 비방과 고발이 뒤따랐고, 투옥이나 교수형이 선고됐다. 마녀 혐의를 받은 자가 몇 달 만에 100명을 넘어갔다. 그중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남자도 몇몇 있었다. 처음에는 혼혈이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음해하다가 나중에는 나이가 많든 적든, 독실하든 아니든, 도움이 되든 안 되든 가리지 않고 아무나 고발했다.

p.40


그러자 내 눈에 마녀가 더 다채롭고 풍부한 이미지로 보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마녀라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보는 것 같았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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