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의 천재성 - 역사에서 간과되었지만 세상을 변화시킨 힘
제니스 캐플런 지음, 김은경 옮김 / 위너스북 / 2021년 5월
평점 :
책의 앞부분에 누가 가장 천재인 것 같냐는 질문에 미국인의 90%는 남자라고 대답했으며, 여성 천재를 말해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마리 퀴리가 유일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데, 사실 나도 이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재를 떠올리면 여성보다는 남성이 훨씬 많이 떠오르고, 그 숫자를 대략이나마 비교해보면 열 배는 차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천재인 여성보다 천재인 남성을 훨씬 많이 접했고, 그 때문에 천재 여성에 목이 말랐다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어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여성의 천재성>은 천재 여성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에서 더 나아가 바랐던 것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책이었다.
먼저 여성의 천재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천재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제니스 캐플런은 점심 식사 자리에서천재의 핵심 조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천재란 양성되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천재라” 그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전 그게 비상한 능력과 명성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놀란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며, 내 포크는 공중에 그대로 멈추었다. 명성이 있어야 한다고?
(...)
그 여성들은 비상한 재능을 지녔지만 자신의 곡을 연주할 관현악단 —과거 당시 모두 남자였다—을 구성할 수 없었다. 물론 그래서 그녀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베토벤이 자신의 협주곡을 집에서만 연주했다면 천재로 여겨졌을까?
(...)
“만일 그게 맞는다면 천재 여성들은 왜 그렇게 적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질문하며 대답을 짐작했다.
찰스는 한숨을 쉬더니 내 짐작과 맞는 대답을 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그 등식의 절반만 충족했어요. 그러니까 능력은 있고 명성은 없었던 거죠. 자신의 능력에 대해 주목받지 못했던 거예요.”
p.35-36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 사례의 주인공은 다섯 살 때 왕족을 위한 공연을 했다는 신동이었던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아닌 그의 누나 마리아 안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위와 같은 이력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재능 덕분에 천재로 불릴 수 있었던 것만 같지만, 거기에 더해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 교육을 받으며 수많은 시간 연습을 하고 아버지를 따라 유럽 순회공연에 가는 등, 전문적으로 양성된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자, 이러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게는 마리아 안나라는 누나가 있다고 했다.
의아하게도 마리아 안나도 같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웬만큼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마리아 안나는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저자가 본 기록에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마리아 안나를 존경했으며 누나에게 음악을 배웠을 정도로 마리아 안나의 재능은 뛰어났다고 했으니 마리아 안나가 타고난 재능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마리아 안나는 천재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까?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마리아 안나가 10대가 되자 딸이 연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마리아 안나는 빈과 파리에서 칭송받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결혼을 목표로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그 이후에 마리아 안나는 홀아비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러한 삶에 마리아 안나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는지는 모르겠다만 마리아 안나의 음악적 재능이 묻혀버렸다는 것은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마리아 안나가 아버지와 전체 사회에 맞서고 자신의 곡을 계속 연주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진정한 천재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에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면 반항자의 냉정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심한 것 같다. 사람들은 모차르트에게 세상의 도전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그저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뒀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누나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p.54
이제 그동안 천재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짐작이 갈 텐데, 저자는 이렇게 천재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만으로, 혼자의 힘으로 될 수 없으므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말하며 저자 개인의 경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천재 여성에 대한 조사와 천재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이 책에서 그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했던 것처럼, <여성의 천재성>을 읽으면서 수학, 과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가진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애둘러서라도 자신의 천재성을 세상에 내보인 이들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어 삶에 자극을 주고 희망이 되기도 하며,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한다.
마이클 벌랜드가 천재에 대한 조사에서 던졌던 질문의 답을 보면 이 문제가 왜 사라지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남성들에게 혹시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15%의 남성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단 한 명도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 조사에 응답한 남성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능력에 망상을 품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보여준다. 뭔가가 실현 가능하다고 믿어야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p.16
그렇다면 이 책은 여성들에게만 유익한가 묻는다면 나는 남성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고 대답하겠다.
여성의 천재성이 묻힌다는 것은 여성 개인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손해이기 때문이다.
만약 앞서 말한 마리아 안나가 음악적 재능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듣는 음악은 한층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핵분열을 발견하여 물리학계를 뒤집어 놓았던 리제 마이트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벨상을 빼앗기기 이전에 핵분열을 발견할 기회조차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하면, 그동안 편견 속에서 간과되고, 무시되고, 묻히고,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을 여성들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화가날 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사는 인류로서 아쉬운 일이 아닌가.
그러니 자극과 격려가 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천재성을 살펴보고 존중하고 장려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이 책은 여성은 물론이고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여성의 천재성>을 읽으면서 서평에는 1/10도 인용하지 못할 정도로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은데, 내 손가락이 부르트더라도 밑줄 그은 부분을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올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저작권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리며, 그냥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가 간과한 천재는 당신의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일 수도 있고,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일 수도 있고, 당신의 딸이나 손녀일 수도 있다.
나는 젊은 작가 쉴라 헤티 Sheila Heti의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한 영향력 있는 평론가는 “문학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라며 그녀를 극찬했다. 그녀의 소설 <사람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How should a Person Be?>의 초반부에서는 천재 여성이라는 주제를 묘하게 비틀어서 말한다.
“여성이 되는 것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천재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예시가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 천재가 바로 나일 수도 있다.”
p.20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