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 - 태조에서 순종까지, 왕의 사망 일기
정승호.김수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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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조선 팔도를 통틀어 왕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곳에서 지낸 사람이 있었을까?
거기에다 조선의 왕은 매화, 즉 대변까지 확인 받으며 사생활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철저하게 건강 관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니 생각외로 각종 질병을 앓지 않은 왕이 없다.

본문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는 책의 저자 이력이 특이했는데, 공동저자 두 명 중 한 명은 관광학/법학/심리학 박사이며 많은 저서와 연구 논문을 썼지만 책날개에 소개된 저서는 또 모두 부동산 관련 책이었고, 다른 한 명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이자 과 교수로 관광/호텔/외식 관련하여 활동하며 잡지에 커피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저자 둘 다 수상 이력이 많고 관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책의 주제와 밀접한 역사나 의학과 관련된 이력은 보이지 않아서 어쩌다가 조선 왕의 질병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해당 분야 전문가가 쓴 글이 더 전문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걱정을 조금 했지만, 한국연구재단 학술/인문사회사업의 지원을 받아 조선에 대한 책을 여럿 출판한 인물과사상사에서 출판된 책이고, 한의학과 의학 분야 박사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으며 (추천사를 쓴 네 명 중 세 명도 의학 분야 종사자다), 공동저자 중 한 명이 외식산업분야 전문가로서 조선 왕들의 식습관, 음식과 술에 대한 부분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고 하니 이 책 내용과 관련이 없어 보이던 이력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어 처음에 했던 걱정은 떨치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본문을 직접 읽어보니 (의학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마치 의학 전문가가 쓴 것처럼 의학적 지식과 그에 따른 추론 과정이 타당해보였고, 책을 쓸 때 참고한 논문과 단행본 그리고 고문헌도 말미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에서 저자는 조선의 1대 왕 태조 이성계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에 한 명을 더 더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까지, 총 스물일곱 명의 왕들이 앓았던 질병과 죽음의 원인을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문서에 적힌 증상과 왕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추리한다.


사망 하루 전인 6월 29일은 가장 긴박한 하루였다. 나인들이 말하기를, “상에서 한참 잠드신 뒤에 갑자기 열에 괴로워하시는데 이따금 헛소리를 할 뿐 아니라 기운이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라고 한다.
이러한 증상은 뇌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뇌졸중의 전조 증상으로 갑자기 한쪽 팔다리에 힘이 없거나 저리고 감각이 없거나, 말을 못하거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게다가 심한 두통이 있으면서 토하는 증상이 있는데, 이러한 증상은 인종의 증상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뇌졸중이나 뇌종양도 심한 고열을 발생하기도 한다.

p.158-159


조선의 왕들 중에는 재위 기간은 6년 2개월로 짧지만 전쟁터를 누빈 무사로서 가진 강인한 체질과 정신 덕분인지 74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영조 다음으로 장수한 태조 이성계 같은 왕도 있었지만 (물론 그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조선 최고의 건강 관리 하에 놓인 왕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질병을 앓고 또 단명한 왕들이 많았다.

조선의 스물일곱 왕 중에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또 의외라고 생각할 왕은 성군 중의 성군으로 유명한 세종대왕이 아닐까 싶은데, 고기를 좋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세종은 이번에 보니 너무나도 인간적인 왕이었다.

세종은 태종이 살아서 대리청정을 하던 1422년 상반기까지는 건강했지만 그 이후에는 잔병이 많아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정도였으며, 29세 때인 1425년부터는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본디 운동을 싫어하고 육식을 좋아하는 대식가였던세종은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해 아버지 태종의 3년상 중에도 고기를 먹는 등 음식 조절에 있어서는 의지력이 약한 왕이었다.

그 때문인지 세종은 소갈증, 그러니까 당뇨병과 안질을 비롯한 당뇨병 합병증으로 평생 고생했고, 척추에 염증이 생겨 움직임이 둔해지는 병인 강직성 척추염으로 자리에 누웠으며, 성인성 질환(성병)인 임질도 앓으면서 <세종실록>에는 세종의 질병에 대한 기록만 100회에 걸쳐 나왔을 정도였으니, 저자는 책에서 세종을 질병 종합선물세트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원래 자신이나 가족이 아프면 안 찾던 종교를 찾게 될 정도로 무엇에든 의지를 하고 싶어지곤 하는데, 세종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가 고열과 오한이 반복되는 학질에 걸리자 세종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왕임에도 궁궐까지 비우고 어머니를 모시고 절과 산을 다니며 기도와 주술 같은 무속 치료를 했다니 말이다.

이렇게 안질로 인해 침침한 눈과 아픈 몸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눈부신 업적을 이루다니 세종대왕이 더욱 대단해보이는 한편, 운동을 싫어하며 음식 앞에서는 약해지고 질병 때문에 기도나 주술에 의지하기도 한 모습은 우리네와 다르지 않아 인간적으로 보였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에서 저자가 조선의 왕 스물일곱 명이 앓았던 질병을 추리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조선 왕의 생활 습관과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의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종기(조선에는 종기로 고생한 왕이 많다)와 치통 그리고 하복부의 통증 때문에 대소변을 잘 보지 못하며 생식기가 붓고 아픈 산증을 앓은 중종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관들이 내린 처방이 인상적이다.

심열과 갈증을 호소하는 중종에게 의관들이 처방한 특별한 약물은 야인건수... 그냥 똥물이다!
야인건수는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처방이고, 중종도 효험을 인정하여 8회에 걸쳐 야인건수를 복용하기도 했으며 죽기 전날에도 청심환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개똥은 몰라도 인간의 똥이 약으로 쓰이긴 한 것이다.


결국 11월 4일 의관들은 아주 특별한 약물을 처방한다. 야인건수, 즉 바로 똥물이다. <동의보감>은 이 처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성질이 차서 심한 열로 미쳐 날뛰는 것을 치료한다. 잘 마른 것을 가루로 만들어 끓는 물에 거품을 내어 먹는다. 남자 똥이 좋다.”
야인건수는 곧바로 효험을 발휘한 것 같다. 8일에는 의원 박세거가 들어가서 진찰하고 이렇게 말했다.
“갈증도 덜하고, 열은 이미 줄었습니다.”
중종도 효험을 인정했다.
“전일 열이 올랐을 때 야인건수를 써서 열을 물리쳤다. 혹시 밤중에 열이 심하면 쓰려고 하니 미리 준비해서 들여오라.”

p.143-144


서평에는 조선의 서너 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이 책으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질환을 앓은 조선 왕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며, 나 또한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어서인지 (나뿐만 아니라 아마 현대인들 대부분이 질병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거나 만성질환을 겪고 있을 것이다) 조선 왕들과의 거리감이 한결 줄어들게 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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