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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평점 :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프랑스어는 한국어와 달리 단어에 성별이 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의 원제 Flaneuse(플라뇌즈)는 ‘산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남성 명사 Flaneur(플라뇌르)를 여성형으로 바꾼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모국어인 저자 로런 엘킨이 자신의 책 제목으로 프랑스어를 선택한 것은 파리를 걸으며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프랑스어가 가지고 있는 이런 특수성도 한몫 했을 것이다.
“ (...) 플라뇌르는 남성적 특권과 여유를 지닌 인물형이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으나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은 없는 사람. 플라뇌르는 도시 다른 거주민들은 잘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도시를 이해한다. 플라뇌르는 도시를 발로 머릿속에 담았다. 길모퉁이, 골목, 계단 하나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몽상을 머리에 떠올린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누가 이곳을 지나갔나? 이 장소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p.18”
걷는 것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지금과 달리 19세기 여성들에게 혼자 집 밖으로 나가 걷는다는 것은 오명을 쓸 위험이 있었다.
저자는 과거 여성들이 걷던 도시를 걸으며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소피 칼, 마사 겔혼과 같은 인물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나는 저자의 글을 따라 파리, 런던, 베네치아 등 내가 가보지 못한 여러 도시들을 걸어보고, 그곳을 앞서 걸었던 여성들에 대해 알게 된다.
도시를 걷는다는 일상적인 행위를 저자 로런 엘킨은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 공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공간은 페미니즘의 이슈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 여기 도시의 공간은 끝없이 다시 만들어지고 해체되고 구성되고 경탄의 대상이 된다. “공간은 의심이다.” 라고 조르주 페렉이 말했다. “나는 끝없이 공간을 표시하고 표기해야 한다. 공간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고 나에게 주어지지도 않고 내가 정복해야만 한다.”
테헤란이든 뉴욕이든, 멜번이든 뭄바이든, 여자는 여전히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다.
p.421“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여성들 역시 걷는 자유를 누리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생각했다.
거리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더 위협적인데, 보통 사람들이 여성 인권에 있어서 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선진국에서조차도 그렇다.
예전에 한 여성이 길을 걸으며 찍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영상 속 그 여성이 걸을 때 사방에서 희롱하고 지분거리는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 영상에서 본 행동은 해외에서 흔히 일어나는 ‘캣콜링’이라고 했는데,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그 외에도 수많은 캣콜링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는 비단 거리를 걷는 것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과거 여성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걸었던 여성들을 잊지 않고 우리도 우리 뒤를 걸을 여성들을 떠올리며 걸어나가야 한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