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철도의 밤 인생그림책 5
미야자와 겐지 원작, 후지시로 세이지 글.그림, 엄혜숙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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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만화 <은하 철도 999>는 나에게 충격을 선사한 작품이어서 오랜 시간이지나도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입혀진 흥미로우면서도 철학적인 이야기는 어린 나이의 나도 기계인간과 나와 같은 생물 인간의 차이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게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나 흐른 이번에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은하 철도 999>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 소설 <은하 철도의 밤>이 그림책으로 출간되었고, <은하 철도의 밤>에서는 어떤 메시지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될지 궁금해하며 그림책 <은하 철도의 밤>을 티켓 삼아 열차에 탑승했다.

그림책을 펼치면 푸른 밤하늘에 수놓인 은하수 색지를 지나 그림자처럼 까만 어둠과 색색의 빛들이 대비되는 그림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조반니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북쪽 바다로 가서 돌아오지 못한 지 오래였고 어머니는 아파서 누워 있었기 때문에 조반니는 학교가 끝난 뒤 철길 옆 인쇄소에 가서 일을 했다.
은하 축제날이어서 마을이 떠들썩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데다가 아이들이 조반니를 놀리며 따돌렸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등불을 만들어 강 주변에서 함께 놀았지만 조반니는 그럴 수 없었다.
인쇄소 옆에 있는 철길에 화물 열차가 지나갈 때면 조반니는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조반니에게는 친구 캄파넬라가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쓴 아이로 그려지는 캄파넬라는 조반니를 가엾게 보기는 했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조반니를 조롱하는 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반니는 캄파넬라를 좋아했다.
은하 축제날에도 조반니에게 함께 놀자고 캄파넬라가 먼저 제안해서 인쇄소 일이 끝나고 둘이 만나기로 했지만, 캄파넬라를 만나러 가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조반니는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가버린다.
조반니가 있는 어두운 언덕과 축제 때문에 설치한 조명 때문에 환하게 빛나는 장소가 대비되어 쓸쓸함과 슬픔이 더해졌다.
바로 그 언덕에서 조반니가 신비한 광경을 본 뒤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을 달리는 열차 안이었고, 조반니가 앉아있는 좌석 맞은편에는 캄파넬라가 앉아 있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은하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며 우주의 은하와 성운을 떠올리게 하는 빛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캄파넬라는 이 모든 일에 놀라기는커녕 열차가 정차하는 시간도 알고 있고 열차 밖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해주기까지 한다.
조반니가 탑승한 열차의 정체도 궁금했는데, 열차 밖 풍경 속 상징, 캄파넬라의 모습과 그가 하는 말, 열차에서 만난 다른 승객들의 사연을 알게 되자 이 열차가 어떤 열차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작가의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전달되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사연과 대사를 통해 ‘희생’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전갈의 불이 등장할 때 정점을 찍는다.


“아빠한테 들었는데, 아주 옛날 들판에 전갈이 한 마리 있었대. 전갈은 작은 곤충 따위를 잡아먹고 살았대. 그러던 어느 날 족제비한테 들켜서 꼼짝없이 잡아먹히게 되었대. 전갈은 온 힘을 다해 도망치다가 결국 우물에 빠졌어. 우물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전갈은 그제야 깨달았대. 이렇게 될 거였으면 처음부터 자기가 족제비한테 먹혔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했대. ‘하느님, 다음에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면 부디 남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내 몸을 사용해주세요.’ 하고 말이야. 그랬더니 전갈은 어느새 자기 몸이 새빨간 아름다운 불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았대.”

“(...)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그 전갈처럼 진실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어.”


“세계가 전부 행복해지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라는, 그림책 표지 뒤쪽에 적힌 작가 미야지와 겐지의 말이 그림책에 담긴 메시지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니 그림책을 읽기 전과는 달리 그 문장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희생정신은 고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림책 속 등장인물은 확신이 없었는지 자신이 가진 희생 정신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같다는 것에 안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림책이 가진 한계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이에게 목숨을 건 희생 정신을 요구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록된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은하 철도의 밤>은 미야자와 겐지가 여러 번 고쳤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한 장편 동화였다.
내가 이번에 읽은 그림책은 엄밀히 말하면 미완성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림책을 읽고 나자 미야자와 겐지가 완성했을 <은하 철도의 밤> 이야기는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그림책은 종이와 셀로판지를 오려서 물감 대신 빛을 투사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그림자와 빛을 활용한 후지시로 세이지의 그림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와 잘 어울렸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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