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 머리 앤>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소설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빨강 머리 앤>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오디오북도 만들어졌고, 에세이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뮤지컬로 탄생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캐나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Anne with an E)>은 시즌3까지 제작되었고 최근까지도 인기가 많았다.
<빨강 머리 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에 그래픽노블로는 만나볼 수 없었다는 게 의외인데, 이번에 앤의 이야기가 그래픽노블로 그려져 위즈덤 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 출간되었다.

브레나 섬러가 그린 <빨강 머리 앤>의 등장인물은 모두 봉제 인형이나 목각 인형처럼 단춧구멍만 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래픽 노블을 보며 인형극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등장인물의 생김새가 인형 같다고 해서 그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은 칸 하나하나에 그려진 소품들과 등장인물이 입은 의상은 앤 셜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구체화 했고, 앤이 마릴라와 매슈 커스버트 남매와 함께 사는 초록 지붕 집이 있는 애번리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한 페이지 또는 두 페이지 가득히 그려진 풍경들...
이야기의 처음에 앤이 착오로 마릴라와 매슈의 초록 지붕 집에 오게 되었던 봄날 지나온 ‘기쁨이 만발한 하얀 길’을 보고는 나도 앤처럼 감탄을 했고, 여름 날 숲의 나무들이 만든 그늘과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빛이 만든 풍경에서는 숲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을이 되어 빨강, 노랑, 주홍빛으로 물든 나뭇잎들로 알록달록한 나무들과, 땅에 쌓인 낙엽을 신나게 차는 앤을 보면서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흰 눈이 쌓여 온통 하얗게 변한 겨울 풍경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워서 나도 앤과 다이애나와 함께 하얀 눈 위를 가로질러 뛰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또다시 만물이 생동하며 라벤더 밭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봄이 찾아오고...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그래픽노블이 주는 즐거움이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이다.
온갖 사고를 치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또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앤, 어떻게 매번 이리 말썽이니.”
“그래도 실수할 때마다 배워요. 자수정 브로치 사건 때는 내 것이 아닌 물건에 손대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유령의 숲 사건 때는 지나친 상상은 금물이라는 걸 배웠고요. 머리를 염색하고는 허영심을 고쳤죠. 그리고 오늘부로 낭만에 너무 집착하는 일도 없을 거예요. 마릴라, 두고 보세요. 앞으로 훨씬 나아질 거예요.”
“그러고 보니 수다도 줄었지? 최근에는 영 조용하구나.”
“소중하고 예쁜 생각을 하되, 보물처럼 가슴속에 간직하면 더 좋다는 걸 배운 거죠.”

p.191-192


“마릴라, 무슨 일 있어요?”
“네가 처음 온 날 입었던 볼품없는 누런 면 혼방 원피스가 생각나는구나. 조금만 더... 애번리의 철없는 꼬마로 머물러 주면 좋을 텐데.”
“지금도 그대로예요. 제멋대로 뻗은 가지를 조금 쳐내고 새싹이 돋으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지만 뿌리는 언제고 언제고 초록 지붕 아래 깊이 묻어 둘 거예요. 그리고 제 뿌리를, 마릴라와 매슈를, 제 모든 하루하루를 더욱 사랑할 거예요.”

p.200-201



온갖 사고 중에서는 앤이 착각해서 다이애나에게 산딸기 주스가 아닌 과실주를 주는 바람에 다이애나가 취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말풍선 안에 글자가 잘린 게 오류인 줄 알았는데 다이애나가 점점 취하면서 앤이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그래픽노블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고, 같은 줄거리도 작가가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더 기억에 남을 수 있으며,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긴 이야기를 230여 페이지의 그래픽노블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었거나 내용을 알고 있는 게 이 그래픽노블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수다쟁이 앤은 많은 사랑을 받아온 캐릭터이지만 나는 예전에는 시끄럽고 극적인 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앤의 이야기를 보면서 정이 들었는지 점점 앤이 좋아졌고, 이렇게 그래픽노블도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원하던 남자아이가 아닌데다 수다스럽고 사고도 많이 치는 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앤과 함께 하며 동생 매슈 만큼이나 앤을 사랑하게 된 마릴라에게 공감이 되었다.



마릴라는 앤의 극단적인 기질을 뜻대로 다잡지 못했다. 기쁨의 절정에서 “고통의 심연”까지, 아이의 기분은 애번리의 정겨운 바람에 나풀대는 연처럼 쉽사리 치솟고 흔들렸다. 마릴라는 이 오갈 데 없는 아이를 단정하고 얌전한 어린 숙녀로 바꿔 놓겠다는 생각을 슬슬 포기했다. 물론,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실은 영혼과 불꽃과 이슬로 빚어진 앤의 천성을 좋아하게 됐다.

p.158



앞서 말했듯 많은 사랑의 받아온 <빨강 머리 앤>은 팬층이 두텁고 앤의 이미지를 활용한 물건이나 관련 도서를 모으는 팬도 있는데, <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도 기쁜 마음으로 읽고 수집품(컬렉션) 목록에 추가하는 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