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 없는 고양이
다케시타 후미코 지음, 마치다 나오코 그림, 고향옥 옮김 / 살림 / 2020년 4월
평점 :
내가 길고양이와 연이 닿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오래도록 길고양이와의 연이 지속될 줄은 몰랐는데, 그동안 여러 길냥이들이 스쳐가기도 했지만 꽤 오래 얼굴을 보며 지낸 고야이들도 있다.
날이 풀리고 길고양이 TNR을 진행한 후, 살림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름 없는 고양이>를 읽으면서 내 기억 속 길고양이들을 떠올려보았다.
사실 나는 좋은 일이든 뭐든 오래 하면 지치는데 이 그림책을 읽고 나니 계속해서 길고양이와의 연을 이어갈 힘을 얻었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책과의 만남은 지나칠 수 없는 그 눈빛 때문에 손을 내밀게 되었다는 점에서 길고양이와의 만남과 비슷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도 표지 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저 눈망울을 보면 눈길을 거두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얀 표지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저 고양이는 다른 많은 길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없는데, 마을 곳곳에서 사랑을 받고 그 애정의 증거로 주어진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고양이들을 부러워한다.
멀리서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름 없는 고양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아렸다.
그중 꼬맹이라는 이름의 채소 가게 고양이는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쪼그마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도 큰 고양이들 사이에서 혼자 작은 몸으로 밥을 먹던 새끼 고양이에게 꼬맹이라고 이름 붙여줬다.
우리 동네 꼬맹이는 아직은 다른 고양이들보다 작지만 잘 자라는 중이니까 몇 달 뒤면 그림책 속 채소 가게 꼬맹이처럼 이름을 조금 부끄러워할 덩치가 되겠지.

또 내가 사는 곳에는 나 말고도 길고양이를 챙겨주는 분들이 있기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고양이들이 몇 마리 있는데, 미미와 동그리라는 서로 다른 느낌의 두 이름으로 불리는 카페 고양이를 보고는 그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한 고양이에게 여러 이름이 붙는 이런 경우는 길고양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 때문에 생기는 흐뭇한 일이 된다.
하지만 하나의 이름도 없어서 슬퍼하는 이름 없는 고양이는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절에 사는 고양이 보살이가 직접 이름을 지어보는 게 어떠냐며 마을에서 고양이 이름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제안에 이름 없는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찾아 나섰지만 마음에 와닿는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고, 비를 피하는 고양이의 마음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이름을 찾는 고양이의 주눅이 든 표정과 몸짓은 그동안의 길 생활이 어땠을지를 짐작하게 하고, 고양이가 이름을 찾는 과정에서 구박받는 길고양이의 삶을 보여준다.
길고양이.
더러운 고양이.
이상한 고양이.
그런 건 이름이 아니야.
이게!
저리 가!
훠이 훠이!
이런 것도 이름이 아니야.
작가 둘 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고, 특히 그림 작가 마치다 나오코가 그린 고양이의 모습은 집사로서의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사실적이어서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했고, 종이의 질감, 그리고 물감과 붓의 흔적이 드러나는, 내가 선호하는 매력적인 방식으로 그려지고 칠해졌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다.
또 이 그림책은 고양이와 함께 해온 글 작가 다케시타 후미코와 그림 작가 마치다 나오코에게 소중한 작품일 테지만,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긴 고향옥 번역가에게도 세상을 떠난 반려견의 이름을 담은 특별한 작품이 되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내 경험을 돌이켜봐도 이름을 붙여준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른 고양이가 된다.
더 친밀하게 느껴지고, 마음을 쓰게 되고, 더 사랑스러워지고, 그 고양이에 대한 슬픔과 기쁨 모두 배가 된다.
그래서 길고양이의 끼니를 챙겨주지만 정이 들까봐 무서워서 이름은 차마 지어주지 못했다는 분을 본 적도 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러분이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으면 좋겠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의 구절처럼,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다가와 또는 다가가 꽃이 되는 일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길고양이와 연이 없다 해도 우리는 애착을 가졌다는 의미로 살아있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이름을 붙여주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준다는 의미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앞서 말했듯 <이름 없는 고양이>를 보고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는데, 이름이 주는 의미와 두 작품에 담긴 감성이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는 길고양이에게 한정되지 않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책을 볼 때는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면지에 그려진 고양이와 강아지를 하나하나 보고, 본문을 읽고, 책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면지를 본다면 마음 한켠이 따스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면지도 꼭 챙겨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절에 사는 고양이 보살이의 말처럼 고양이 이름 하나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