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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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많은 여성들의 고군분투가 있었기에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수많은 저항과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잊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여성들이 지금처럼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힘든 과정을 거쳐 가지게 된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는 소설이 출간되었나보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대통령과 칼 코빈 목사의 주도하에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을 막고 권리를 앗아가는 '순수 운동'이 일어난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인데, 여성들은 책을 읽을 수도 없으며 그들의 손목에는 하루 할당량인 100단어를 초과하면 충격이 가해지는 카운터가 채워져 언어 또한 통제당한다.

주인공 진 매클렐런은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혼란으로 잃어버린 언어를 되살려주는 연구를 하는 박사이자 인지 언어학자였지만, '순수 운동' 이후에는 언어를 통제당하는 수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애플워치를 찼던 그녀의 손목에는 이제 카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의 최대 걱정거리는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카운터가 아니었다.

진은 남편 패트릭과의 사이에 네 자녀가 있는데, 열일곱 스티븐과 열한 살 쌍둥이 샘과 레오는 남자아이였지만 막내 소니아는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도 손목에 카운터를 차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진은 항상 소니아를 걱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과 소니아는 손목에 채워진 카운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대통령의 형이 스키 사고로 의식은 있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가 되었는데, 관련 연구를 했던 진에게 연구 팀에 들어와 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진은 고민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딸 소니아의 카운터도 풀고 학교를 그만 다니게 한다는 조건으로 연구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옛 상사였던 린과, 진과 깊은 관계에 있었던 로렌조를 다시 만나 연구를 진행하던 중 그들의 연구 결과를 악용하려는 정부 음모를 알게 되고, 그것을 막고 목소리를 되찾기 위한 행동을 한다.


여자들에게 하루 100단어만 주어지는 세상이라고 하니 <멋진 신세계>처럼 먼 미래가 배경일 것 같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그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다.

그래서 과연 이런 세계가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자를 신경질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대사나 혼전 관계나 혼외 관계 시 여성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등, 현실과 똑 닮은 모습이 보일 때면 그런 의심은 뒤로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목소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장이다.

 (...) 하지만 내 잘못이 맞다. 다만 내 잘못은 목요일에 모건의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 시작된 게 아니다.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투표하지 않았을 때부터.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포스터를 만들거나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 수 없다고 재키에게 수없이 말했었던 그때부터였다.


p.348

주인공 진 매클렐런은 과거에는 여권을 위해 분투했던 인물이 아니었고, 목소리를 잃은 후에야 행동하게 된 인물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거 룸메이트였던 재키 후아레즈가 목청 높여 '순수 운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길 때 진은 재키가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키가 투표를 독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하지 않았고, 여성 의원이 있던 자리를 점점 '국가에 가장 큰 이익이 될' 남성 의원이 차지할 때도, 옛 상사 린 대신 서툰 남자 과장이 그녀를 대신했을 때도 이런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다.

 재키는 내가 중고품 가게에서 산 소파에 책 한 권을 던졌고, 나는 양손을 뻗었다.

 "이거 읽어봐. 모두가 그 얘길 하고 있어. 모두."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소설이네. 나 소설 안 읽잖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주일에 500쪽짜리 논문을 읽어야 하는 나로서는 허구의 세계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뒤표지만이라도 읽어봐."

 나는 재키 말대로 뒤표지의 문구들을 읽고 대답했다.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절대. 여자들이 참지 않을걸."

 "지금이야 쉽게 말하겠지."

 

p.157

 "악마는 착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승리한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잖아요?"


p.304

그렇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속 끔찍한 미국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방관한 결과다.

이 페미니즘 소설은 재키 후아레즈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리고 끔찍해진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목소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상황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에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돌이키는 것은 나빠지는 것을 막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아두기를 바란다.

 다시 내게 재키 목소리가 들렸다.

 자유로워지려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


p.382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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