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씨돌, 용현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SBS 스페셜 제작팀 외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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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인간임에도 살다 보면 인류애를 잃게 되는 일들을 수없이 접하게 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에 담긴 이야기처럼 잃어버린 인류애를 충전시키고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일들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용현 씨의 이야기가 방송된 <SBS스페셜>을 보지는 못했지만, 화제가 되어 기사화된 덕분에 용현 씨의 이야기를 짤막하게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된 덕분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는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같은 서술과 취재를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인용문을 사진과 함께 읽다 보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보는 듯했다.



정선의 작은 마을 봉화치에는 산불감시 일을 하며 지내는 자연인 씨돌 씨가 있었다.

고라니가 사냥 당할까 봐 고라니 발자국을 지우려고 빗자루로 눈을 쓸고 다녔고,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잡초도 뽑지 않는 '저절로 농법'으로 텃받에서 작물을 기르며 동물들이 작물을 먹도록 두었고, 화를 잘 내지 않던 그가 화를 내던 때는 도롱뇽을 죽일 수도 있는 제초제 때문이었을 만큼 그는 동물과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또 그는 찐 옥수수나 뻥튀기 등의 간식 위에 꽃을 얹어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을 가진 사람이었따.

그런데 어느 날 씨돌 씨는 마음에 찾아왔던 때처럼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고, 7년 전 그를 취재했던 제작진은 봉화치를 사랑했던 그가 갑자기 떠난 이유가 알고 싶어 그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군사독재 정권 당시 군 생활을 하다 억울한 죽음을 맞은 정연관 상병의 가족이 사는 집 안방 벽장에 몸을 숨기고 있던 청년이 있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증거 수집도 하고 정연관 상병의 가족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며 함께 했고, 그렇게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앞장섰다.

그리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정연관 상병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자 요한 씨는 사라졌다. 

그의 흰적은 공권력 때문에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인 한울삶에서도 발견되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했고 시위와 집회 현장에서는 매질을 당하면서도 한울삶의 부모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12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던 순간, 그리고 정권이 바뀐 뒤 의문사 진사 규명을 요구하는 자리, 요한은 늘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p.153

그리고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민간구조대원들 사이에는 눈물을 흘리면 일하는 씨돌 씨가 있었다.

  이십사 년 전 구조작업 이후 씨돌을 만나지도, 그의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는 고진광 씨에게, 우리는 씨돌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높은 콧날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웃는 모습이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라며 웃어 보입니다. 강원도 정선 봉화치의 자연인 씨돌로 살아왔다는 근황을 들려주자, 고진광 씨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자신이 기억하는 이름은 씨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묻어두었던 기억을 더듬던 고진광 씨가 그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요한! 천주고 이름 있잖아요, 요한이.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아요. 요한 씨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많이 늙었겠다."


p.172

자연인 씨돌은 청년 요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청년 요한과 자연인 씨돌은 모두 김용현 씨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 용현 씨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 검프가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역사적 현장에 존재하고 기여했던 포레스트 검프와 자신의 의지로 여러 사람들의 개인사에서부터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 이곳저곳에 있었던 용현 씨는 선한 마음을 가진 것까지 닮았다.


용현 씨가 씨돌과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들, 그리고 용현 씨의 과거를 통해 책을 읽는 우리는 용현 씨를 알아가는데, 그렇게 용현 씨가 왜 요한과 씨돌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는지 알아가다 보면 용현 씨는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작진이 찾아가 용현 씨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우측 반신마비에 언어장애가 찾아와 최근에는 요양원에서 투병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의지가 강한 모습은 이전에 용현 씨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던 그대로였다.


그리고 제작진은 용현 씨의 이야기를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한다.

 "요한, 씨돌, 용현으로 살아오는 동안 민주화 운동도 하고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사람도 구하고 정선에서는 자연도 지키고,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작 선생님께 도움되거나 관계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왜 그런 희생적인 삶을 사셨어요?"


 우리의 질문에 용현의 왼손이 주저 없이 움직입니다. 노트 위에 거침없이 적어 내려간 말은 당시 인터뷰 현장에 있던 전 스텝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머리를 한 대 맞기라도 한 듯,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p.225-227

처음 기사에서 이 문구를 읽었을 때 나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용현 씨의 이 대답은 인간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무게를 가졌다.


용현 씨에게 '인간'이란 무엇인지는 그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보의 원천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과 자연을 포함하여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그의 선한 마음이 인간에 한정되지 않고 동물과 자연에 향한다는 것이 좋고, 세상에는 이런 길을 택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알리고 싶고, 책의 인세 일부는 김용현 님의 재활치료를 위해 기부된다는 문구를 보았기 때문에 용현 씨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사람들이 용현 씨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해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고 소장함으로써 머리를 강타하고 가슴속을 휘젓고 울리는 용현 씨의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용현 씨가 책으로 출판하고 싶어 했던 그 많은 글들 또한 읽고 싶다.

그의 시집이 출간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오! 도라지꽃>, <김씨돌 산중일기2:청숫잔 맑은 물에>, <그대 풀잎 비비는 소리 들었는가> 이렇게 세 권의 시집과 에세이가 세상에 나와있다.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낸 듯한 글은 그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읽기 어려울 거라고 했지만, 지금이라면 조금 더 그의 글을 일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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