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총기와 마찬가지로 마약은 먼 이야기라고, 영화 속에나 등장하고 미국과 같은 해외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 우리나라에서 마냥게 노출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사회 고위층 인물과 그들의 자녀와 연예인들의 마약 반입 및 투약 소식을 보며 , 밝혀진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약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면 온라인상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나만 빼고 다 했다'는 만응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약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이전과는 다르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실재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폴라북스에서 출간한 필립 K. 딕 걸작선의 13번째 책으로, 역시 마약을 소재로 한 SF 소설인 <스캐너 다클리>도 마찬가지였다.


<스캐너 다클리>의 주인공 밥 아크터는 잠입 약물 수사관으로, 경찰 조직 내부에 침투해 있을 마약 조직이라는 위험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도록 수사관으로서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프레드라는 암호명을 사용하고 '스크램블 수트'를 입니다.

스크램블 수트는 그 수트를 입은 사람을 외모나 목소리로 특정할 수 없도록 그저 일렁이는 형체로 보이게 하는데, 그가 보고를 하는 대상이며 그에게 임무를 전달하는 상관 행크를 대면할 때도 서로 스크램블 수트를 입고 마주한다.

그렇게 약물 수사관 프레드의 정체, 즉 프레드가 밥 아크터라는 것은 본인 외에는 상관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스크램블 수트를 벗고 프레드가 아닌 밥 아크터로 돌아오면 그는 누구라도 약쟁이로 볼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마약을 하고 있었고, 그와 함께 사는 두 친구 짐 배리스와 어니 럭맨 그리고 지인인 착스 프렉 모두 마약을 하며, 관심 있는 이성인 도나 호손은 마약을 할 뿐만 아니라 중개상이기도 하니 그의 주변은 온통 마약에 찌들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그가 약물 수사관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그러던 어느 날 익명으로 밥 아크터의 행적이 의심스럽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어 그의 집에 감시용 홀로 스캐너 장치까지 설치하게 되었지만, 프레드는 밥 아크터가 자신이라는 말을 하기는커녕 밥 아크터가 프레드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에 그가 추적하지만 중독되기도 한 D물질 때문에 인격이 분리되고 마는데...

 밥 아크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밥 아크터가 얼마나 될까? 기괴하고 엉망인 생각이었다. 일단 나는 두 사람을 떠올릴 수 있잖아,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중 프레드라는 사람은 밥이라는 다른 사람을 감시할 예정이지. 같은 사람인데도. 아니, 같은 사람이 맞나? 프레드가 실제로 밥이라고 할 수 있나? 아는 사람이 있나? 적어도 나는 알아야겠지. 프레드가 밥 아크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나는 누군가? 둘 중 어느 쪽이 나인데?


p.156-157

주인공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러한 상황도 이 소설을 읽고 싶게 했지만, 그 이전에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다.

여러 작품이 영화화된 SF계 거장 필립 K. 딕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이 소설도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다) 그가 약물에 중독되었던 경험이 반영된 소설이라는 것이다.

기대했던 대로 소설 속 약물 중독자들의 생활, 사고방식, 생각의 흐름은 생생했고, 작가도 약물중독 경험이 있다는 것은 등장인물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신뢰감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전달하는 교훈은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은 약물 남용이라는 선택의 결과를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약의 폐혜를 알리고 독자가 마약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게 한다.

이것은 필립 K. 딕이 원하고 목표로 했던 바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모델이 된 친구들을 비롯한 이 소설을 바쳐 마땅한 이들(약물 중독자 지인을 말하는 것일 테다)은 모두 죽거나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고 적어 내려간 목록 또한 약물 남용에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이 소설이 필립 K. 딕과 그 주변 사람들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나 자신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 자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도 이 소설 자체다. 이 소설은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일부는 우리 모두가 신문에서 읽은 적 있는 이야기다.


작가의 말, p.446

다만 노골적이고 상스러운 여성 혐오를 볼 수 있는 마약 중독자들의 대화와 사고방식에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하고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읽어야 이 소설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여야겠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