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드래곤 클럽 I LOVE 그림책
케이티 오닐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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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를 마시는 기분을 들게 하는 그래픽노블을 만났다.

뿔에서 찻잎이 자라는 작은 용인 티 드래곤이 등장하는 이 그래픽노블은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따스한 색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이야기와 등장인물 모두가 차를 마셨을 때처럼 가슴부터 뱃속까지 따뜻한 느낌을 준다.



고블린의 피를 타고난 그레타는 대장장이 엄마와 엄마가 만든 물건을 파는 아빠를 둔, 엄마로부터 대장장이 일을 배우고 있는 소녀다.

어느 날 그레타는 골목에서 사나운 짐승에게 공격받고 있는 재스민 티 드래곤을 구해주었는데, 그 드래곤이 동네 바깥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헤세키엘의 티 드래곤이라는 것을 듣고 찻집을 찾아간다.

그렇게 헤세키엘을 만나 티 드래곤 기르는 법을 배우기로 하고, 그곳에서 헤세키엘과 함께 찻집을 운영하는 에릭과 얼마 전부터 함께 살게 되었다는 미네트와도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티 드래곤의 뿔에서 자라나나 찻잎은 마법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그 찻잎으로 제대로 우린 차를 마시면 그 티 드래곤이 유대 관계에 있는 존재와 나눈 기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능력을 통해서 그레타는 헤세키엘과 에릭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사고 때문에 뭐든 쉽게 잊게 된 미네트에게는 찻잎이 가지고 있는 이 능력이 두렵게 느껴졌지만 자신의 캐모마일 티 드래곤에게서 얻은 찻잎으로 우린 차를 마심으로써 가지고 있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기억은 그저 네 안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미네트.

너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사물 안에도 존재하는 거야.

캐모마일이랑, 에릭이랑, 헤세키엘이랑... 그리고 내 안에도!


p.54

나는 너무 많은 기억을 잃었고, 여기서 더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어.

그래서 내가 좋은 기억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던 거야.

너를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p.54

한편 그레타의 엄마는 예전과 달리 검이 잘 쓰이지 않더라도 다른 물건을 함께 제조하며 대장장이 일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레타는 일을 이어받는 것에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예민한 티 드래곤을 기르고 그 잎으로 차를 만드는 일은 보기보다 번거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어서 기술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레타는 티 드래곤 차를 만드는 기술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대장장이 기술이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티 드래곤과 헤세키엘, 에릭, 미네트와의 만남이 그레타 안에 묻혀 있던 마음도 떠오르게 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페미니즘과 퀴어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대장장이 일을 하는 그레타 엄마의 모습이 있지만, 다른 등장인물도 성별에 따른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게 그려졌으며 인물 사이의 관계 또한 성별에 따라 한정되지 않는다.

페미니즘과 퀴어 요소가 어찌나 잘 녹아들었는지 특히 퀴어 요소는 책소개를 먼저 읽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 고정관념을 허물기 때문에 누구든 거부감 없이 이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외형을 보고 등장인물을 남녀로 구분지어 인식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런 책이 사람들의 인식을 변하게 하는 데 기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레타도 나를 놀라게 하는 배려심을 가진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는데, 초반에 골목에서 다른 동물에게 위협받는 재스민 티 드래곤을 구할 때부터 그 면모가 드러난다.

보통은 다른 생명체를 위협하는 동물을 나쁜 존재로 보고 쫓아내기 마련인데 그레타는 그 동물들도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며 고기를 내어준 것이다.

그레타가 상처받은 미네타를 치유하듯, 이토록 무해하고 푸근한 판타지 세계는 내 마음을 녹여서 나 또한 치유받는 느낌이 들게 했다.


또, 작가 케이티 오닐이 그린 만화 한 칸 한 칸은 마치 일러스트 같았는데, 말풍선과 폰트 그리고 종이까지 그림과 어우러지게 신경 써서 그래픽노블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림 속 곳곳에 있는 식물들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배경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 푸근한 그래픽노블을 계속 만나고 싶고, 책 뒤쪽에 있는 '티 드래곤 핵심 안내서'에 따르면 이번 그래픽노블에 등장하지 않은 티 드래곤들도 있으니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 케이티 오닐의 또 다른 그래픽노블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와 <바닷속 유니콘 마을>도 읽어보고 싶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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