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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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은 SF계의 거장으로 언급이 되는 작가여서 그의 소설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은 전에 단편을 하나 읽어보기는 했지만 짧은 단편이었던지라 커트 보니것의 매력을 알기에는 충분치 않았는데, 이번에 <갈라파고스>라는 장편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가서 그 유명한 저작 <종의 기원>을 쓰는 데 큰 공헌을 한 곳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갈라파고스를 여행하고자 한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을 위해 모인 사람들과 이 여행 상품에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원래 사람들은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에 참가하여 에콰도르에서 바이아데다윈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를 여행할 예정이었으나 에콰도르와 그 주변 국가들의 상황이 변화면서 그 여행은 무산이 된 데다 주변은 약탈로 뒤집어졌고, 에콰도르의 엘도라도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시 약탈당해 아무것도 남지 않다시피 한 바이아데다윈호를 탄다.

그렇게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해 결혼 사기를 치며 살아온 제임스 웨이트(이번에는 윌러드 플레밍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했다), 남편과 사별한 은퇴한 전 고등학교 교사인 메리 헵번, 만다락스라는 방대한 양의 지식을 담고 있는 휴대용 통역기를 발명한 젠지 히로구치의 아내 히사코 히로구치(이들은 겐자부로라는 가명을 쓰고 참가했다), 금융업자 앤드루 매킨토시의 눈이 먼 딸 셀레나 매킨토시와 그녀의 안내견 카자크, 갈라파고스로 그들을 데리고 갈 배 바이아데다윈호의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 그리고 우연히 함께하게 된 칸카보노족 소녀들은 바이아데다윈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의 산타로살리아섬에 도착한다.

이렇게 산타로살리아섬에 고립되고만 이들이 최후의 인류이자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 책의 서술적 특징은 정체가 불명확한 화자가 최후의 인류이자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 되는 인물들이 갈라파고스에 가게 되는 1986년으로부터 백만 년 후에 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화자는 각 인물들의 과거와 사정을 모두 알고 있으며 백만 년 후에 존재하고, 또 바이아데다윈호를 만든 인부 중 한 명이었으니 백만 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게 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화자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조금씩 덧붙여지는데, 화자가 누구일지 추측하며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화자가 곧 죽을 인물의 이름 앞에 ★을 붙이고 뒷 일을 미리 알려주는 스포일러를 한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마치 누가 범인인지, 혹은 누가 죽을 것인지 미리 알려주는 추리물과 비슷한데, 김이 새기는커녕 어쩌다가 이 인물이 죽게 될지, 그리고 어쩌다가 그런 일이 발생할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게 되더라.

지구상에는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전 인류가 소모할 수 있을 만큼의 식량과 연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건장한 사람도 음식 없이는 고작 40여 일 정도만 견딜 수 있을 뿐, 그 후에는 죽음이 닥칠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기근은 베토벤 교향곡 9번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지나치게 큰 뇌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p.34

무엇보다 이 책은 풍자의 대가라고 불린 커트 보니것이 쓴 소설답게 곳곳에 찰진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

화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일들의 원인은 백만 년 후의 인류와 달리 과거의 인류들이 너무 큰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참... 커트 보니것이 이 소설을 쓴 지도 여러 해가 지났는데 지금도 공감이 되는 걸 보면 세상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최후의 인류와 새로운 인류에 대한 글의 배경으로 갈라파고스를 선택하고 적절하게 다윈과 진화론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는 커트 보니것의 노련함을 알 수 있었고, 아래 인용글에서 로켓을 묘사한 것과 같은 번뜩이는 묘사와 (갈라파고스에서의 생존에는 도움이 크게 안 되었다지만) 만다락스 안에 있는 인용문을 중간중간 배치한 것도 글을 읽는 맛을 살렸다.

아주 완벽하게 작동하는 그 로켓에 대한 공적을 어떤 인간도 단독으로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 로켓은 자연이 가할 수 있는 분산된 폭력을 어떻게 포착하고 압축해서 작은 용기에 담아 자신들의 적에게 투하할 것이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다란 뇌를 열심히 굴린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성취해 낸 것이었다.


p.205

커트 보니것의 유명한 작품 <제5도살장>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서평을 읽어본 적이 있어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과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문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갈라파고스>도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들은 조금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와 죽음을 냉소적으로 말할 때 '에이, 할 수 없지 뭐...... 어쨌든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잖아'가 반복되어 커트 보니것의 소설이라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나는 소설 속에 언급되는, 갈라파고스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을 찾아봐서 소설만큼이나 독특한 생명체의 모습을 보며 갈라파고스를 알아갈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갈라파고스가 가지고 있는 그 특별함과 신비로움을 영리하게 이용하며 재미를 더하고, 마치 오늘날 쓴 글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소설이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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