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벡 도리-스타인 지음, 이수경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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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픽션이 아니라 저자가 백악관에서 일한 경험담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을 책이다.

저자 벡은 워싱턴 D.C.에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면서 임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기를 소망하며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의 중고거래 사이트이자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이자 구인구직 사이트인) 크레이그스리스트에서 법률회사 속기사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했는데, 그 구인글은 사실 백악관 속기사를 구하는 것이었다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진다!

벡은 속기사 일에 지원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벡이 백악관 속기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벡이 (국회의원들의 아들딸들과 손자 그리고 당시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의 딸들이 다니는) 시드웰 프렌즈 학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백악관에서 근무할 사람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위험이 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기 떄문에 이게 큰 장점이 된 것이다.

백악관 속기사로서의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법원의 속기사처럼 실시간으로 말을 듣고 빠르게 타이핑을 하거나 사무실에 앉아 녹화된 영상과 녹음된 음성을 들으며 타이핑만 하는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출장을 가면 따라가서 동료들이 듣고 타이핑해 문서로 남길 수 있도록 대통령의 인터뷰와 브리핑들을 녹음하는 일을 하고, 사무실에서 영상과 음성을 들으며 타이핑하기도 하지만 실시간으로 하는 타이핑이 아니라 빠른 속도는 필요하지 않기에 속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눈여겨봐지는 건 백악관 속기사는 말단 직원이지만 대통령의 곁에서 (녹음을 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제본으로 읽었기에 사진은 모두 가제본을 찍은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아니, 제목을 볼 때부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떠오른다.

국내 번역본 제목을 이렇게 바꾼 이유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도 그 영화를 여러 번 떠올렸기에, 서평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워싱턴은, 사람으로 치면 절대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지 않으며 항상 얼굴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여자다. 또는 가까운 친구 10명과 주말에 함께할 브런치를 예약하고 종업원에게 주는 팁 15퍼센트가 적당하다고 굳게 믿는 남자다. 나는 여행 가방 2개를 들고 정신을 바짝 차린 채 워싱턴에 왔다. 내 이력서에 경력을 채우는 용도로 이 도시를 이용해야지. 물론 이 도시는 집세와 맛없는 11달러짜리 샌드위치 값으로 내 돈을 몽땅 빼앗아가겠지만.


p.19-20

영화의 주인공 앤디와 벡은 자신이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분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초반에 벡이 워싱턴이란 도시 자체가 자기와는 맞지 않다며 '워싱턴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영화에서 앤디가 남자친구에게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불평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앤디처럼 벡은 초반에는 적응의 어려움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악관 내에서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도 생기고 일에도 익숙해져 간다.

출장 때 운동 후 시간에 쫓겨 급하게 짐을 내놓느라 땀에 젖은 옷과 함께 샤워 후 갈아입을 속옷까지 몽땅 내놓거나 호텔 헬스장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말을 걸 때 말 한마디 못 했던 벡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바마와 잡담을 나누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벡은 출장에서 돌아오면 또 다음 출장을 위한 가방을 싸야 하는 바쁜 생활을 하는데,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이나 미디어 전세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보고 경험하는 것을 글로 읽으면서 백악관에서 일하는 것도 흥미롭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꿈꾸던 삶을 산다'는 말은 백악관 세계의 생활을 표현하는 우리만의 은어 같은 것이다. 놀랍고, 스트레스 넘치고, 흐릿하고, 피곤하고, 낙담할 때도 많지만 내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떠올리는 순간 그 모든 게 감내할 만한 것이 되는 그런 생활. 그리고 '꿈꾸던 삶을 살고 있어'라는 말은 친구나 가족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지금 당장 누군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5분이라도 쉬지 못하면, 지금 당장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일주일 동안 휴가를 떠나지 못하면 나 조만간 누구 한 명 죽일지도 몰라'라고 쓰고 싶을 때 대신 쓰는 말이기도 하다.


p.119

이야기 중 그녀의 연애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워싱턴에서 사귄 남자친구 샘과 백악관에서 만난 제이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친구 샘이 바람을 피웠던 데다가 일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와중에, 10살 차이가 나지만 대화도 잘 통하고 백악관 직원 모두에게 인기 있는 제이슨에게 끌리게 된 것이다.

특히 벡에게는 추억의 자동차이기 때문에 계속 눈여겨보았던 차의 주인이 제이슨이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앞으로 이 둘이 뭔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남자친구와의 불화 이후 능력 있는 남자의 등장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비슷하지만, 벡의 연애 이야기는 솔직하게 쓴 만큼 더욱 현실적이고 답답하기도 했다.



벡이 백악관에서 근무 중일 때 미국 대통력은 버락 오바마였다.

당시에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좋은 일화가 먼저 보여서 몰랐지만, 이후에 일본에 대한 태도나 한반도에 미친 영향을 알게 되면서 나에게는 버락 오바마가 좋게만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벡이 생일 때 타보게 된 (미국 대통령을 위한 헬기인) 마린 원 안에서 버락 오바마와 한 대화를 보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책에 전체적으로 버락 오바마에 대한 호감이 녹아있는 만큼 벡의 필터를 거쳤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해서 누가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터스는 백악관 직원들이 대통령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의 약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점은 과거형(~했다)이 아닌 현재형(~한다)로 쓰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문장이 익숙지 않았지만, 글에 현장감을 주려고 이렇게 쓰지 않았나 싶다.


벡은 앤디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고, 백악관 근무 중에도 백악관 사람들과 근무를 소재로 개인적인 글을 썼다.

예전에 조깅 중에 대통령 고위 보좌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플러프가 벡을 추월해 달린 적이 있었는데, 백악관 사람들은 운동과는 거리가 멀 거라는 자기의 편견을 깬 그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다.

어느 날 데이비드 플러프가 백악관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벡은 '날쌘돌이 전략가'라고 제목을 붙인 그 글을 선물하게 되는데, 나는 그 부분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렇게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워온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며 꿈을 이룬 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백악관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위해 움직이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여럿 보이는 만큼,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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