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이 SF소설의 소재는 과학 기술, 시간, 환생 그리고 영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모여있어서 읽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다.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해리 오거스트인데, 해리 오거스트는 한 번의 인생을 사는 선형적 인간과 달리 반복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시간이나 환생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와 차이점이 있는데, 두 소재가 서로 합쳐져서 생기는 것이다.

해리 오거스트는 죽고 나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과거의 태어나던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가게 되는데, 큰 이벤트는 반복되어서 일어나지만 해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과거 삶에 대한 기억은 몇 년이 지나면 떠오르게 되는데, 이렇게 반복되는 삶을 사니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 영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리는 이렇게 반복된 삶을 살면서 다양한 직업을 갖기도 하는데, 초반에는 과거의 기억에 혼란을 느껴 어린 나이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뛰어내려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한 번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이 반복된 삶을 살고 있음을 털어놓자 정신병원에 강제로 들어가게 됐고, 그 생애에서 이후의 계속된 삶에서 트라우마가 되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해리 오거스트처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칼라차크라 또는 우로보란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이 해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해리 같은 사람들이 태어나 살아갔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크로노스 클럽이다.

칼라차크라들은 초반에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혼란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칼라차크라가 느끼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반복된 삶을 잘 살아가도록 돕는 곳이다.

크로노스 클럽은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굵은 역사를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리는 크로노스 클럽을 아게 되어 다른 칼라차크라를 만나고, 서로 돕고 도움받으며 반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온다.

해리 오거스트 개인적인 위기도 있지만, 인류 전체적인 위기다.

책은 다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린 칼라차크라가 늙어서 이번 생에서 죽어가고 있는 해리에게 말을 전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시간을 거슬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해요.

여기서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박사님이 때마침 죽어가고 계시니 저한테 전달된 그대로 메시지를 박사님의 클럽들에 전해주시길 부탁드려요."

(...)

"언제나 그래야 하듯이 세계는 끝나고 있어요.

하지만 세계의 종말이 더 빨라지고 있답니다."

p.10-11

미래의 칼라차크라가 죽으면 과거로 가서 다시 태어나 삶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때 죽기 직전의 다른 칼라차크라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메시지를 받은 칼라차크라가 죽어서 더 이전의 과거로 가 다시 태어나게 되고, 과거의 칼라차크라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식으로 미래에서 과거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는 돌 같이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것에 글을 새기는 식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이렇게 먼 과거와 미래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종말이 빨라지면 미래에 태어날 칼라차크라가 태어날 수 없기에, 반복된 삶을 사는 칼라차크라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빨라지는 종말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칼라차크라는 육체가 죽어도 다시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니까 죽음이라고 할 수 없기에 두렵지 않다.

하지만 칼라차크라도 정신과 육체가 죽을 수 있다.

첫 번쨰는 '망각'으로, 과거 삶의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다시 태어나더라도 과거의 기억은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반복된 삶을 살게 된다.

두 번째의 경우는 태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칼라차크라가 태어나는 장소와 날짜를 알면 그 칼라차크라가 유산 등으로 세상 밖을 보기 전에 없앨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반복된 삶도 없게 되는,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죽음이다.

보통의 죽음은 칼라차크라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의 경우에는 큰 위협이 되어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인간의 삶은 기억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칼라차크라의 이 두 가지 죽음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해리 오거스트의 반복되는 삶 이야기도 그렇지만, 빨라지는 종말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빨라지는 종말의 원인을 어떻게 막을 수 잇을까 궁금해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더 그렇다.

두꺼운 해리 오거스트의 여정을 지켜보며 몰입하게 되었는데, 해리와 그 적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이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남았다.


또 해리 오거스트가 직면하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만났다.

예를 들어 해리는 몇 번의 삶을 반복하며 알아내고 싶어 한 것이 있는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유혹이 빨라지는 종말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과 상충하는데, 나도 해리와 함께 고민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해리 오거스트를 통해 만나게 된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시간을 더 풍부하게 해서 좋았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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